『거대한 괴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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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 국제항로를 타나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아직도 일본인이다. 휴지 이외에는 변기에 버리지 말라는 것이 일본어로 따로 적혀 있는 것을 봐도 짐작 할만도 하다.
올 들어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아랍」인 들이다. 제각기 새로 산 일제「카메라」를 메고「샘서나이트」여행가방을 들고, 손에는「프랑스」제 모피 외투를 걸치고 있다. 이들은 그러나 1등 석에 앉아 가는「아랍」옷 차림의 주인을 따르는 시종들에 지나지 않는다.
「오일·달러」란 신조어가 생긴 것은 지난 71년. 그때의「아랍」산유국 전체의 석유수입은 약 60억「달러」정도였다.
그게 73년에는 l백50억으로 껑충 뛰고, 74년에는 6백억「달러」가 넘었다.
요새 산유국들은 하루 평균 1억6천4백만「달러」이상씩을 긁어모으고 있다.
세은의 추계로는「오일·달러」는 5년 이내에 6천5백억「달러」에 이르고, 85년에는 1조2천억「달러」선을 넘어설 것이라 보고 있다.
그만한 돈이면 과연『거대한 괴수』라 할만도 하다.
그 괴수가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를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온 세계가 전전긍긍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 괴수의 촉수는 온 세계에 걸쳐 뻗쳐 있다. 이미 지난해에「이란」은 서독의「크룹」제철회사의 주식 25% 이상을 사들였다·
이밖에도「폴크스바겐」자동차회사,「텔레푼켄」전자,「지멘스」조선,「바이에르」약품 등에도 침투되어 있다.
「타임」지에 의하면 하루 2억「달러」씩 이나 미국회사들의 주식 매수작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오일·달러」의 해외투자를 위한「아랍」계 은행은 지난해까지 이미 15개 사나 신설되었다·
이렇게「아랍」산유국들이 해외투자를 서두르는 데는 까닭이 있다. 아무리 노다지라 해도 「아랍」석유도 서기 2천년께 부 터는 고갈되기 시작한다. 그때를 위한 경제적 대비책을 지금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한해 동안에 산유국들은 5백억「달러」나 해외시장에 투자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온 세계의 산업계가「아랍」인의 입김 속에 말려들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는 신경을 몹시 쓰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해에「쿠웨이트」도 서독의「벤츠」사 주식 14%를 사려다 실패했다. 미국의「로키드」항공사에 자본참가 하려던「이란」의 기도도 좌절되었다. 두 나라 정부가 반대한 때문이었다.
최근에 한국 정부는「사우디아라비아」로 부 터 1억「달러」차관교섭에 성공한 모양이다.
하루 평균 2억「달러」이상씩이 굴러 들어오는「사우디아라비아」로선 1억「달러」란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앞으로는 현금차관은 어렵겠다는 한은 총재의 말이다. 「아랍」사람들은 부력만이 아니라 의식까지도 몇 해 사이에 급 성장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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