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원본 SBS에 편집 맡긴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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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짝’ 홈페이지 캡처.

SBS 남녀 커플 맺기 프로그램인 ‘짝’ 출연자가 목숨을 끊은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방송사 측으로부터 편집한 녹화 영상을 받기로 해 증거 인멸 허용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영상은 숨진 전모(29·여)씨가 제작진의 강압에 의해 촬영에 임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자료다.

 제주 서귀포경찰서는 7일 “SBS 측에 전씨를 포함한 모든 출연진이 등장하는 촬영 영상자료를 정리(편집)해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촬영 영상이 최대 1000시간 분량으로 너무 많아 원본 전체를 분석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SBS 측에서도 ‘자료를 정리해 보내려면 일주일가량 걸린다’고 알려왔다”고 덧붙였다. 전체 촬영 영상은 고정식과 이동식 카메라 10여 대를 동원해 ‘짝’ 출연자 12명을 7일 동안 촬영한 것이다.

 경찰은 현재 촬영장이자 숙소인 펜션에서 사건 직전 촬영한 2시간30분짜리 영상만을 확보하고 있다. 나머지 영상은 방송사 측이 자료를 보내줄 때까지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또 참고인 조사 결과와 전씨가 숨지기 전 지인들과 나눈 SNS 대화 내용을 중점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촬영 과정에 강압 의혹이 제기된 만큼 전체 촬영 영상을 강제로 신속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강성두 변호사는 “편집해 제출하면 중요 증거 자료가 조작될 수 있다”며 “강요 혐의를 적용하려면 폭행이나 협박 여부를 파악해야 하는 만큼 유족들의 고소나 증거 보전 신청 등을 통해 영상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아직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자료를 강제로 압수할 수 없다”며 “정리된 영상을 받는 것은 양이 많기 때문이지 증거 인멸을 방치하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유족들도 “증거인멸 가능성을 열어줬다”며 반발하고 있다. 영상을 편집하면 강압이나 강요, 사생활 침해 등 문제가 되는 부분을 빼서 제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씨의 어머니 이모(53)씨는 “처음부터 방송사와 싸워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조사 과정에서도 방송사와 경찰이 짜고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촬영 현장의 세트장이 하루 만에 철거된 것도 논란이다. SBS 제작진은 전씨가 숨진 채 발견된 서귀포시 한 펜션 촬영장에서 장비 등을 철수하겠다고 요청했고 경찰은 이를 허락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이미 촬영 영상을 확보했고 현장감식으로도 전씨의 심리 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철수를 허락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씨 고교 동창 A씨는 “화장실 앞까지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등의 강압적인 촬영 정황을 확인하려면 현장을 보존해야 하는데 서둘러 철수를 허락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SBS 측은 ‘짝’ 프로그램을 폐지키로 했다. SBS는 7일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출연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프로그램 ‘짝’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께 다시 한번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건의 사후 처리에 최대한 노력할 것이며 앞으로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프로그램을 폐지하게 된 데 대해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SBS는 사건 발생 직후 경찰 조사 결과를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온라인에서 폐지 서명 운동이 벌어지는 등 논란이 커지자 폐지 결정을 내렸다. 이번 주 방송 예정이었던 68기 2부와 녹화가 끝난 69기 방송분도 방영하지 않기로 했다.

제주=최경호 기자, 김효은·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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