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한국 문학|전후 세대를 중심으로|김윤식 (서울대 교수·문학 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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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25전쟁이란 보통 1950년 6·25에서 53년 7·27 휴전까지의 기간, 그리고 적의 인명 피해 1백80만, 「유엔」군 측 33만명, 전비 1백50억「달러」의 결과로 말해질 수 있다. 그것이 완료형일 수 없음은 휴전 상태와 그 긴장 과정이 한층 지속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의 일환임은 새삼 부정할 필요가 없다.
해마다 그 문학적 의미 관련을 검정하는 작업이 거듭 되어져야할 명분은 이에 있을 것이다.
이 진술은 당연히 다음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즉 역사는 기록이지만 문학은 그 기록의 범주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초월한다.
따라서 문학이 이 사정거리 속에 놓여 있음만은 부정되지 않는다.
한편 6·25는 전쟁이지만 한민족에 있어서는 전쟁 일반이면서 현저히 그것을 초월한다. 문학과 전쟁이 양자의 일반성과 한국 문학이라는 특수성의 인식 범주 속에서 비로소 6·25의 문학적 의의가 놓여 있는 것이다.
전쟁 문학의 일반적 특질이 「휴머니즘」으로 집약된다는 점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살육과 죽음이라는 것의 공적 승인이 자동적으로 극한 상황을 전제케 하며 이 속에 가장 생생히 인간의 조건이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6·25의 문학 양상을 기성층과 신인층으로 구분하여 논하기 어렵게 된다. 기성층의 활동에는 종군 작가단을 형성하여 국방부 산하의 여러 단체에서 「휴머니즘」을 외친 문학 행위가 상당한 규모로 전개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통 기반을 가지면서도 소위 전후 세대 문학이 기성층과 구분된다고 할 때는 문학사적 의미강이 필지의 사실로 전제된다.
그 새로움의 측면을 부각시켜 보면 대략 다음과 같아진다.
우선 전통 단절 의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후 세대의 형성 과정과 이 사실은 대응되고 있다. 그들은 일본식 교육과 해방후의 미국식 교육 과정 속에서 인격 형성에 임했기 때문에 자국의 전통 학습 과정을 이수할 수 없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오늘날 보면 허망하기 짝없는 인식 부족이지만 그들로서는 정직했다고 보아질 수 있다. 이들 세대가 스스로 무중력 상태에서 출발한다든가, 화전민 문학이라 자처한 것은 결코 과장일 수가 없다. 그들의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선명히 부각될 수 있는 것이 세계의 동시성이라는 인식 태도이다. 무중력 상태라면 무엇이든지 가능할 것이라 착각되기 쉽지만 그것이 엄연히 서구 전후 문학의 중력권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음은 지금 와서 보면 너무나 명백하다.
이 세계의 동시성이라 했을 경우 한국 문학사적 의미강에서 보면 소재상의 새로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주제의 다양성이나 심화를 전후 세대의 공적으로 살핀다고 할 경우도 있을 수 있겠으나 문학에서 주제의 심화를 기법과 분리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결국 새로움의 의미가 기법 쪽에 놓인다는 점에 동의될 것이다. 따라서 전후 세대가 말하는 세계의 동시성이란 서구 현대 문학의 기법을 주로 말한다고 보아질 수 있다.
가령 오상원이 보여준 의식의 흐름 수법이 아니고는 전쟁에 뛰어드는 결단의 인간상이나 그 내면화가 포착되지 않으며 김성한의 풍유적 수법 없이는 인간의 왜소화가 포착되지 않을 것이며 장용학의 보존적 정신 분석의 수법이 아니고는 『요한 시집』의 주제의식은 포착되지 않을 것이다.
기성층과 전후 세대 문학이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요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수법이 또한 한국어의 재편성과 그것의 세계화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전후 세대의 평론 전개에서 한층 뚜렷하다. 전후 평론이 기성 공격과 저항 혹은 「앙가주망」투로 외쳐지는 한편 분석주의 방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자는 「본래 있어야 할 인간상의 회복」에 관한 소박한 분노의 구호이지만, 후자는 보다 진지한 출발점이었다. 이상이 집중적으로 논해졌다는 사실에는 이상 문학이 유일하게 「볼륨」을 띤 언어 및 기법을 가졌다는 판단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후 문학의 이러한 새로움이 문학사적 의미강을 형성한 사실로써 충분히 인정된다 할지라도 그 한계 또한 분명히 지적되지 않으면 안될 사태에 직면된다. 한마디로 그것은 무국적 상태를 드러내었다는 점으로 요약될 수가 있다. 극한 상황도 수법도 함께 서구적 동시성에 준하는 것으로 계속 밀고 나갈 때는 한민족의 존재적 의미가 끝내는 무화 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에 중성적 문체의 보편화가 필지의 현상을 빚는다. 전후 세대 (50년대)와 60년대 접점에 요란한 전통 논쟁이 벌어졌던 사실은 전후 세대의 한계를 가장 잘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보아온다면 60년대 한국 문학의 높은 응전력의 획득은 실상 기성층을 제1항으로 하고 전후 세대를 제2항으로 한 변증법적 발전 과정에서 파악될 수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한마디 부언 한다면 전후 세대 문학의 인식적 측면, 즉 기록의 문제가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남게 뉜다는 점에 관한 성찰이 현 시점에서 요청될 것이다. 문학이 갖는 증언의 측면은 역사 공간의 삶의 생생한 포착이란 점에서 다음 세대를 향한 열린 창의 몫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 파악은 역사가의 기록만이 가장 확실하다든가 유일한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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