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세관 시절>
하나의 세관에 한국인·일본인·만주인 등 세 나라 사람이 근무하던 대표적인 예가 안동세관이었다.
필자가 안동해관에 들어간 것이 1933년4월.
당시 일본군부는 1931년9월 만주군벌 장작림을 폭살시킨 후 그의 아들 장학량은 화북(중국본토의 북부)쪽으로 쫓아내고 1932년3월 청국 전 황제 부의를 옹립, 소위 만주국이라는 괴뢰정권을 수립한 직후였다.
일본은 괴뢰정권 수립 후에도 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관세제도는 5년간 그대로 두겠다고 선언했다.
필자의 초임은 80원이었다.
중국의 은원은 일본원보다 약 30% 값을 더 쳐주던 때였다.
은전1원짜리 80개를 면 부대에 넣은 채 봉급으로 받아 은행에 가서 바꾸니까 일화 1백3원몇십전이 되었으므로 쌀 한 가마에 10원하던 당시 봉급수준으로는 좋은 편이었다.
필자는 세관원 양성소에 들어가 6개월 교육을 마치고 나니 안동역 여구반에 배치됐는데 신의주상업 재학시절 실시된 중국어 검정시험에서 2급 자격을 땄으므로 외국어수당 10원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일본인 강본이 해관정이던 안동해관에는 중국사람이 약 1백명, 일본직원이 50여명, 한국인이 10여명 있었다.
8·15해방 후 세관간부였던 이승정·정관준·공명재·이승세·조병덕씨 등도 이 해관에 있었다.
안동해관은 전회에서 쓴바와 같이 폭력배를 앞세운 밀수꾼들이 들끓었는데 일본관헌들이 일 상들의 밀수를 묵인한 것을 보면 밀수는 일본이 만주에 대한 경제침략의 한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35년1월 안동해관 관내 장백현(함남 혜산진 건너편)에 해관 분변(출장소)를 두었다. 내가 중국어를 안다고 해서 이 출장소 책임자로 가게 되었다. 장백현과 혜산진사이에는 혜장교가 있었다. 나는 부임하자마자 다리 옆에 초소를 세우고 직원 3명이 세금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초소부근의 압록강은 강폭이 좁아 아랫도리만 벗으면 어디서나 강을 건널 수 있어서 징세실적은 오르지 않고 반면에 밀수는 많았으나 직원 3명으로는 단속할 도리가 없었다.
장백현은 충청북도만한 크기의 지역이나 대부분이 백두산록 산림지대로 주민의 7할이 한국사람이었기 때문에 독립군의 활동무대가 되어있었다. 봉안의 혜산진에는 일본군 수비대 1개 대대와 국경순찰대가 있었고 장백에는 일본영사관·경찰관 파출소가 있었다.
1937년5월 우리독립군이 혜산진 경찰서 보천보 주재소를 습격한데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임강현(평북 중강진 건너편) 세관출장소가 습격을 당해, 민심이 어수선하고 불안했었다.
이해에는 만주국 건설 후 5년간 그대로 존속시키기로 약속했던 관세제도가 바뀌어 신관세법이 실시됐다.
신관세법에 따라 해관이 세관으로 개칭되었고 세관원의 대폭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다.
나는 그해 12월 감정관보로 승진되어 한국인 30여명이 근무하던 안동세관 감정과에 전임되었다.
이때 세관장은 조선총독부 재무국 관세기사로 있던 지하정부였다.
감정과에 부임하자 직물과 지류를 맡게되었는데 너무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여 상품감정학을 다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모리라는 일본인 감사관한테서 배우기로 하고 나는 그 댓가로 그가 좋아하던 냉면과 보신탕을 점심때마다 사주기로 했다. 우리는 안동 3번통에서 한국인이 경영하던 음식점을 주로 다녔다.
1940년10월께로 기억된다.
하루는 통관사를 통해 봉천 대륙극장으로 가는 커튼용 천을 검사하다가 신고가격이 실제가격의 반도 안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통관사를 시켜 불러오게 한 화주가 나타나서 나를 좀 보자고 청해왔다.
사무실 복도로 나간 나에게 일인 화주는 흰 봉투를 내밀며 『잘 봐달라』고 졸랐다.
나는 그 봉투를 일단 받아가지고 관계서류와 함께 모리 감사관에게 가서 사유를 이야기하고 입건할 것을 요구했다.
모리와 함께 열어본 봉투 속에는 백원짜리 지폐가 2장 들어있었다.
이 돈을 증거물로 입건요구서를 작성하는 동안 화주는 도망을 쳤으나 그 다음날 감시과 범칙계원에게 체포되어 벌금 3천여원을 물게되었다.
이 사건으로 연말연시에 한목 보려던 대륙극장측에서는 개관이 늦어져 큰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
그후 나는 l943년 사무관보로 세무과에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아 월남하게 되었다. <계속>계속>안동세관>
(1363) 제46화 세관야사(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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