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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구하는 참사람|이서옹 대종사<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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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근대의 문명은 분명히 인권을 되찾고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확장하려는 방향을 취해 왔다. 그래서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했으며 또한 이를 이용함으로써 산업사회를 형성하게 되었다.
또한 정치체제로서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민주주의가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채택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가 지나치게 강조된 결과 부조리한 사회현상이 나타나자 전체주의 사회체제를 채택한 나라들도 생겨났다.
「민주」와 「전체」두 체제는 특수와 보통, 자유와 평등의 상위관계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은 양자의 원만한 조화와 통일을 희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참된 조화나 통일을 발견할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오히려 끊임없는 모순 속에서 다할 날을 기약할 수 없는 투쟁과 전쟁의 현실을 나타내게 되는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이는 인간이성이 감성을 온전히 지배하지 못한 결과다. 다만 개인에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집단이나 국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일보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무력을 행사하려는 준비를 갖추고 있다.
모든 국가가 추구하는 이익이란 대체 무엇일까. 물질적 부강과 지배력의 확대다. 어떠한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든 간에 이러한 목적에는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국가이익의 목적이 이런 것이라면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더구나 공산주의자들은 대립과 투쟁을 하나의 기본원리로 신봉하고 있으며 세계의 도처에서 전쟁을 도발, 그들의 맹목적 지지에 수많은 선량한 민중을 희생시키고 있다.
또 과학문명을 이룩한 이성에는 반드시 반이성이 대립한다. 결국 이성의 근본구조는 절대모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인간 허무성이며 여기에서 인간이성의 한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현대 실존철학자들은 인간실존의 비극성을 고백하고 고발한다. 그러나 실존철학에 의해서 삶의 비극성이 완전히 극복되지는 못했다. 그들의 이론조차도 사변적 이성을 완전히 초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중세와 같이 인간이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유일신의 절대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만이 현대를 구제할 수 있는 유일의 길인가.
역사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현대인의 의식구조는 중세인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다. 그러면 무엇이 현대의 극한상과 현대인의 방황하는 실존을 구원할 수 있을까.
여기에 참사람이 있다. 그는 이성에 전적으로 의지하지도 아니하며 유일신에게도 의지하지 아니한다. 생과 사, 이성과 반이성의 절대 모순을 주체적으로 온전히 초월하여 절대자유 절대자율의 삶을 보이신 대해탈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석가모니 세존이시다.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제도, 모든 사상, 모든 습관도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참사람은 절대부정 그대로 절대 긍정하는 해탈자인 것이다. 인류가 오늘날까지 만들어 놓은 온갖 것은 실로 참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참사람의 그림자를 참사람인양 섬겨온 것뿐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본데 주인이고 참사람임을 믿고 깨달아야 되겠다. 이 믿음과 깨달음 속에서 인간의 삶은 근원적인 전환이 가능하게 되고 인류의 문화는 비로소 올바른 방향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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