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에 대학 퇴출 막기 컨설팅" 떴다방 식 영업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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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경영부실대학으로 지정된 지방 사립대의 기획처장 이모(54) 교수는 정부의 부실대학 발표 직후 총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총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실대학 지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족집게’ 대학 컨설팅업체가 있다던데 의뢰해보라”고 지시했다. 이 교수는 몇 달 전 대학 기획처장 세미나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며 명함을 건넨 컨설팅업체 대표를 떠올렸다. 업체는 ‘대학 중장기 발전계획 컨설팅’ 비용으로 1억원을 제시했다. 이 대학은 1억원을 주고 6개월 동안 컨설팅을 받았다. 이 교수는 “부실대학으로 알려지면 학생 충원이 안 돼 등록금 수십억원이 날아가는 판인데 1억원이 아깝겠느냐”고 말했다.

 대학 관련 컨설팅업체들이 호황을 맞고 있다. 최근 대학 구조개혁이 화두로 떠오르자 이들 업체가 대학들을 상대로 ‘불안 마케팅’을 펴고 있다. 여건이 좋지 않아 나쁜 평가를 받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대학일수록 업체들의 제안에 솔깃해한다. 지방 사립대 박모(48) 기획처장은 “경영부실대학으로 선정되자마자 업체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며 “우리 학교의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할 줄 몰라 답답하던 상황이라 7000만원을 주고 컨설팅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학 컨설팅업체는 전국 30곳 이상으로 추산된다. 한국생산성본부·한국능률협회컨설팅 같은 대형 기관뿐 아니라 맥쿼리·머서 등 글로벌 컨설팅업체도 뛰어들었다. 이들은 대학의 인사·재정·학사운영·교육과정 등을 모두 다룬다고 소개한다. 컨설팅업체를 운영하는 송모(45)씨는 “기업 컨설팅으로 시작했는데 ‘대학 전문 컨설팅’을 내걸고 영업 중”이라며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최소 1000만원에서 최대 5억원을 받는다”고 전했다.

 중소 업체들은 보직 교수 행사가 열리면 부스를 차려놓고 명함을 돌리거나 대학 기획처에 팸플릿·e메일을 보내는 식으로 영업한다. 교육부가 부실대학이나 재정지원제한대학 명단을 발표할 때 순위 등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점을 파고든다. 박상훈 계명대 기획팀장은 “주로 ‘우리가 분석해보니 경쟁 대학에 비해 이런 게 부족하더라’는 판촉 전화가 온다”고 전했다. 큐인컨설팅 박찬 대표는 “교수 인맥을 통하거나 알고 지내는 대학 직원끼리 추천하기도 한다”며 “교육부가 수치로 잴 수 없는 정성평가를 강화할수록 컨설팅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들도 이 같은 컨설팅의 실제 효과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 이필환 계명대 교무처장은 “막막하니까 3억원을 주고 컨설팅을 받았는데 진단이 피상적이었다”며 “대학으로부터 자료를 받고 담당자와 10~20분 면담하는 식의 컨설팅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에 대한 잡음을 줄이기 위해 컨설팅을 맡기는 경우도 많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엔 교수·교직원·학생·동문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며 “총장이 구조개혁을 하고 싶어도 불가능한 상황이 많아 이를 무마하려고 외부 업체에 의뢰하곤 한다”고 말했다. 충남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교육부도 컨설팅을 제공하긴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만 있을 뿐 ‘어떻게 고치라’는 비전이 없다”며 “교육부 컨설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성탁·천인성·윤석만·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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