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촌지교사, 촌에서 사람됐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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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봉투'의 참맛을 아느뇨-. '선생 김봉두'의 주인공 김봉두는 촌지를 밝히는 교사다. 그래서 이름도 봉두?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촌지 뜯는 맛에 살던 그에게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진다. 꼬리도 길면 밟힌다고, 드디어 '봉투 밝힘증'이 드러난 것.

교장은 폐교 직전의 한 강원도 산골 분교에 피신해 있으라고 명한다. 폭탄주도 양담배도 없는 벽촌, 전교생 다섯명인 학교에 부임하면서 이 비리 교사의 필사적인 산골 탈출기가 시작된다.

'선생 김봉두'는 감동을 지향하되 그 과정은 부담 없는 코미디로 채워간다. 물론 비리 교사가 산골 아이들의 해맑은 동심에 감화를 받아 개과천선한다는 내용은 도식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크다.

'집으로…'가 그랬듯 '농촌:도시=순박함:때 묻음'이라는 기계적 이분법이 고스란히 적용됐기에 결말도 어쩐지 작위적으로 느껴져서다.

게다가 '집으로…'는 어린 손자가 변화했지만 '선생 김봉두'는 성인이 변한다. 경험상 나이가 들어 환골탈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현실성은 더 떨어진다.

폐교된 후 서울로 복귀한 봉두가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봉투를 챙기며 씨익 웃는 것으로 끝났다면 더 리얼하지 않을까. 하지만 영화는 너무나도 모범적으로 막을 내린다.

이러한 태생적인 흠에도 불구하고 '선생 김봉두'는 재미있다. 김봉두의 과거와 현재를 대조해가며 웃음을 빚어내는 솜씨가 상당한 수준이다.

양담배 말버러나 던힐 대신 청자가, 폭탄주 대신 막걸리가, 현찰 대신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가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봉두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폭소가 터진다.

아이들에게 봉투를 나눠주며 "중요한 건 편지지가 아니라 내용물을 담는 봉투야"라고 일러주던 봉두는 더덕이 들어 있는 봉투를 받아보고 기절초풍한다.

'아~아~아아~ 우리의 서울'을 외치며 서울로 전학 가라고 아이들을 부추기던 그는 "개울도 있고 산도 있는 이곳이 좋다"는 의외에 대답에 아연실색하고 만다.

이처럼 이 영화는 코미디의 기본인 대조법을 능란하게 구사하며 관객의 눈물선을 건드릴 결말까지 성큼성큼 걸어나간다.

'신라의 달밤''라이터를 켜라''광복절 특사'와 달리 단독 주연으로 나선 차승원은 상대역 없이는 불안정하리라는 우려와 달리 그가 아니면 누가 김봉두를 연기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호연을 보여준다.

그의 연기는 꾸며서 한다기보다 어쩌면 저 모습 그대로가 차승원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한다. 그가 약간 밉살스럽지만 완전히 미워할 수만은 없는 특유의 이미지를 1백20% 발휘한 것이 이 영화를 비교적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는 동력임은 분명하다. 코미디 영화에 국한되긴 하지만 차승원의 '독립'은 성공적이다.

이성재.김승우.설경구만큼 쟁쟁한 맞수는 아니지만 함께 출연한 아역 배우들도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높인다. 영화가 끝난 뒤 '~했드래요'라는 강원도 사투리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아이들이 나오면 관객의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심리를 노린 것인지 이 영화는 막판에 아이들을 총동원해 관객의 눈물샘을 집중 자극한다. 특히 폐교가 결정된 뒤 졸업식을 치르는 장면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이 범람한다.

절제의 미가 아쉽긴 하지만 대중 상업영화로서는 크게 나무랄 데 없다. 지난해 '재밌는 영화'로 데뷔했던 장규성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다. 28일 개봉. 전체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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