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 잃은 단편전집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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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서히 일기 시작한 단편소설 「붐」은 이미 그 이전 상당수의 장편소설들이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다른 관점에서 문학작품의 상품화현상으로 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최인호씨의 『타인의 방』『령가』, 조해일씨 의 『아메리카』, 황석영씨의 『객지』, 조선작씨의 『영자의 전성시대』, 송영씨의 『선생과 황태자』 등 일련의 단편집들이 각기 1만내외의 판매 붓수를 기록하고 있는 사실은 우리문학사상 전례 없던 일로서 문학과 대중간에 단단한 가교가 구축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 단편전집 「붐」은 상당한 문젯점을 안고 있다. 물론 작가들의 대표적 단편만을 모아 엮은 단편전집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고 오늘과 같은 「소설의 시대」에 독자들의 관심을 끌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미 꽤 여러 종의 단편전집이 발간됐었으나 최근에 발간된 몇몇 단편전집이 독자들로부터 매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음은 그러한 증거를 대변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최근 간행된 『한국단편문학대계』 (전15권·삼성출판사), 『신한국문학전집』 (전51권·어문각) , 『한국대표단편문학전집』 (전30권·정한출판사) 등과 곧 발간될 『광복30연대표작전집』(전10권·정음사) , 『한국작가출세작전집』 (전12권·을유문화사), 그리고 각종 문고 속에 포함된 개인, 혹은 종합단편집에 수록된 단편들이 상당수 승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편전집을 내는데 있어서 출판사들이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정선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곡 수록작가의「대표작」만을 골라야한다는 출판사의 끈질긴 집념은 대개의 단편전집을 유사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독자가 생각하는, 비평가가 생각하는, 작가자신이 생각하는 「대표작」이란 작가마다 숫적으로 극히 제한돼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작가쪽에나 출판사쪽에나 거의 같은 비중의 문젯점을 드러내는 것인데 작가쪽에서 보면 그것은 『문학작품의「덤핑」화 현상』으로 볼 수 있고, 출판사쪽에서 보면『창의성결여, 출판질서의 구조적 모순현상』으로 설명 될 수 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 『한 작가의 똑같은 작품이 여러 전집에 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면서 『그것은 작가자신이 반성해야할 문제』라고 말한다. 출판사가 단편전집을 기획할 때 수록작가에의 작품청탁은 출판사가 작품을 미리 선정하는 경우와 작가에게 선정을 의뢰하는 경우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후자의 경우에도 이미 전집수록을 위해 다른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더라도 스스로 아끼는 대표작이라는 이유하나로 서슴지 않고 같은 원고를 넘겨줌으로써 중복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전집이든지 신통치 못한 작품이 실리는 것보다 좋은 작품이 수록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며 비록 원고지 장당 2백원내외의 싼 고료이기는 하지만 이미 발표된 원고에 대해 새로 고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작가의 똑같은 작품이 유사한 성격의 여러 단편전집에 등장하는 것은 독자에게 작가의 나쁜 「이미지」를 심어줄 염려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독자에 대한 기만행위도 될 수 있다』는 것이 김윤식씨의 견해이다.
한편 문학평론가 김주연씨는 『작가들이 반성해야할 점이 없지 않으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출판사에 있다』고 지적했다.
김주연씨에 의하면 문학작품의 상품화현상이 작가의 본능과 함께 출판사의 기능이 큰 역할을 한 것이라면 이미 널리 읽혀진 작품들만 모아 전시효과를 과시하는 것보다는 창의성을 살려 읽혀지지 않은 작품들을 개발, 독자들을 문학의 세계에 이끌어들이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특히 실제로 전집편찬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원로문인이나 문학단체의 명의를 편자로 이용하는 경향도 불식 돼야한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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