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재연...「국한혼용」·「한글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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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한교육연합회(회장 박동앙)는 12일 하오 교육회관 강당에서『어문 정책의 문제』라는 주제로 제7회 「교육 논단」을 갖고 해방이후 한글 전용, 국·한문 혼용의 숨바꼭질만을 거듭해온 채 아직도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는 문자 정책의 혼란을 매듭짓기 위한 방향을 모색했다. 다음은 문제 제기에 나선 「국·한문 혼용파」 박갑수 교수(서울대·국어학)와 「한글 전용파」인 김선기 교수(명지대·언어학)의 발표내용 및 전해종 교수(서강대·동양사)의 논평을 간추린 것이다.
▲박갑수 교수=『가엾은 그 학생은 문패가 있는데도 그 집을 찾지 못했다.』 순 한글세대의 문맹 중학생을 날카롭게 야유한 마해송씨의 『문맹 중학생』이란 수필의 한 토막이다.
이는 해방이후 한번도 승복할 수 있는 근거를 갖지 못한 채 한글 전용과 한자병서의 숨바꼭질을 되풀이해 온 변화무쌍했던 어문정책이 빚은 웃지 못할 현실적 비극이다.
우리 나라 어문정책은 1948년 국회 통과를 본 「한글 전용법」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실험적 연구도 없이 감상적으로 처리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 한글파나 국·한문 혼용파의 논쟁도 서로가 구차한 변명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채 어느 쪽도 절대적인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어떤 명문이나 주장에 앞서 한자를 몰라 문맹이란 까막눈의 중학생이 되거나 고등학교를 나오고도 신문 한 장 못 읽는다는 세평이 자자한 현실이 보다 중요한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을 신문의 잘못이라고 돌릴는지도 모르지만 독자 대중의 기호가 국·한문 혼용인 것만은 틀림없다.
또 언어학적 접근이나 민족문화사적으로 보더라도 우리의 언어현실은 한글전용보다 국·한문 혼용이 바람직한 것이다.
▲김선기 교수=현재 문제가 되어있는 것은 한·중어를 한글로 적자는 주장과 한문자로 적어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언어 과학적 입장에서 보면 학교를 「학교」로 적으나 「학교」라고 적으나 실제적 효과에서는 똑같다.
요즈음 한문글자를 다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우리민족의 발전을 크게 저해하는 처사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한문을 모르면 전통적 문화가 끊어지고 만다는 주장도 실은 걱정할 일이 못된다. 어차피 2백자의 한자를 가르쳐 퇴계 선생의 문집을 읽어 내려가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국민 기본고전이 될 만한 것 1백 책쯤을 한글로 번역해 놓으면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전통문화를 계승할 수 있지 않은가.
백가지 이론적 주장에 앞서 한문도 한글만으로 충분히 가르치고 배울 수가 있다는 사실의 인식이 중요하다.
▲전해종 교수=한자는 어느 의미에서는 우리의 글이다. 우리 조상들이 2천년동안 한자를 받아들여 우리 언어 속에 융합시켰고 문화생활 속의 중요한 요소로 이용해왔다.
한자를 처음 만든 것은 우리 민족이 아니더라도 우리 전통 문화 속에 한자문화가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닐 수 없다.
한자의 폐단보다는 그 이용이 매우 컸던 게 사실이다. 특히 인문과학 분야의 논리적 추리와 학문적 논술을 위한 한자의 힘이란 거의 절대적이다.
따라서 어학의 전문가가 아닌 입장의 나로서는 학문적인 논의의 참가는 어렵지만 모든 현실적 여건으로 볼 때 국·한문 혼용에 찬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랜 연구결과에 따라 합리적으로 한자를 간략하게 개혁하려는 시도나 노력은 바람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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