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울|최규남(전 서울대 총장·현 과기연 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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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민족의 번영과 불멸성은 그 민족의 창조 정신, 그리고 민족의 창조 능력에 있음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자기 민족 문화를 창조 개발하는 민족만이 이 지구상에 살아남아 있고 또 번영을 누릴 수 있다.
한때 만주 땅에서 번창하였던 여진족은 자기 민족의 「말」인 여진어를 상실하고 또 자기 민족 문화를 창조 계승치 못함으로써 여진족은 이 세상에서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2천여 년 전에 「로마」인에 의하여 나라를 잃고 전 세계에 흩어져 표류 생활을 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종교, 그들의 언어를 유지계승하고 또한 그들의 탁월한 과학적 창조 정신을 발휘함으로써 20세기에 와서 그들의 옛 고향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국가를 재건하는데 성공하였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조상들의 창조적 업적은 찬란한 것이었다. 더우기 정신세계, 즉 내적 세계를 위하여 창조 정신을 발휘한 성인군자도 허다하다. 퇴계나 율곡, 그리고 서화담 같은 분들은 우리의 정신세계를 위하여 영원 불멸의 새 가치를 창조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조는 탁월한 철인이나 현인, 그리고 천재적 과학자만이 가질 수 있는 독점물 만은 아니다.
창조는 가장 현실적이며 우리의 몸 가까운 곳에 있으며 그리고 가장 작은 일에서 가장 평범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현실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관찰하고 분석하여 보다 새것을 발견하겠다는 「그 마음가짐」만 가진다면 우리가 있는 곳, 우리가 가는 곳에는 어디서나 창의력을 발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누구나 다 자기의 창의력을 동원할 수 있는 「창조의 명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다만 문제는 창의력을 발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뉴튼」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하였다는 게 좋은 예다.
사과는 「뉴튼」 이전에도, 지금도 나무에서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자연현상을 관찰한 사람은 유독 「뉴튼」뿐만 아니다.
다만 「뉴튼」의 「창조의 거울」에 이 낙하의 현상이 영사되어 위대한 발견으로 유도한 것 일뿐이다.
그렇다면 창의력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내 나름대로 그 뜻을 말해본다면 창의력은 소재 즉 주어진 여건의 조직화라고 말하고 싶다.
돌이 산 속에 묻혀 있을 때에는 아무 가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을 캐내서 조각가의 손에 의하여 다듬고 깎고 갈고 쪼아 훌륭한 예술품을 창작해 낼 때에 비로소 새 가치를 지닌 창조품이 되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주어진 전투력을 가지고 이것을 잘 편제하고 배치하여 우세 일로의 왜적을 기습 분쇄하는데 창의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어진 여건의 조직화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몇 해 동안에 우리의 주위에는 많은 변화가 이룩되고 있다. 그 중에는 자력에 의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타력에 의한 변화 등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 시대적 변화의 의의가 잘 정리되지 못한 채 좌왕우왕하는 유동적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세계는 우리의 변천 과정을 주시하고 있다.
이 유동적인 변화를 인정되고 변영의 변화로 승화시키는 요체는 무엇일까? 우선 우리와 선진국간의 창의력의 격차를 압축하여 거리를 좁히는데 전력을 경주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해마다 많은 돈을 들여 외국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과 창의력을 길러야 하겠다. 준비 없이 외국의 고도의 기술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모방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모방은 어디까지나 창조를 전제로 하는 모방이 되어야 한다. 창조를 전제로 하지 아니하는 모방은 타국의 기술적 노력을 면치 못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유동적 변화를 인정되고 번영의 변화로 승화시키는 요체이며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의 영구 운동의 「에너지」원은 개념이나 공론이 아니고 민족의 창조의 힘이다. 타력에 의하여 잠정적으로 민족이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민족의 영속 운동을 위하여는 우리 스스로가 개발한 창조의 힘을 가져야한다.
현재 급박한 국제 정세로 보아 우리 민족이 살아나갈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자력에 의한 국력배양 이다.
그리고 창조정신이야 말로국력배양의 원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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