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서 돌아온 난민 등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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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쟁은 오래 무수한 비극적인 후유증과 깊은 상흔을 남기기 마련인데,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전쟁 피난민의 문제라고 하겠다.
인지사태의 비극적 종말로 인해 공산당 통치를 반대하는 수십만의 월남인들이 안전과 새 삶을 찾아 국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망국의 한을 품은 이들 현대판 월남인의 「엑서더스」에는 딱하게도 신념과 용기를 갖고 앞길을 인도하는 한사람의 지도자도, 「꿀과 젖」이 흐르는 「가나안」의 복지도 예고 된 바가 없는 형편이다.
지도자들은 그들을 받들고 따랐던 국민을 버리고 일신의 안일만을 위해 서둘러 망명하거나 도피했으며, 인접 동맹국가들과 심지어 미국조차도 이들 난민들의 수용을 꺼리거나 거부하고있는 기막힌 실정이다.
이런 상황하에 이역에서 애써 마련했던 생활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한국적 월남 철수자와 이에 끼여서 한국에 오는 월남인 피난민 등 1천 3백만 명을 태운 해군 LST함 2척이 13일 부산항에 입항했다.
이들을 맞아들이는데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재 동남아 지역서 번지고 있는 「콜레라」 「장티푸스」등 무서운 전염병의 국내 침투를 막기 위해 물샐틈없는 대책을 세우는 일임은 더 말할 것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이들을 따뜻이 맞아 위로해 주고, 꺼져가는 삶의 의욕을 다시 북돋게 해 줄 우리 국민의 인도정신과 인류애의 발휘 여부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오랜 전쟁의 시달림과 긴 항해로 인해 몸과 마음이 모두 최악의 상태에 놓여져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입항하게된 월남 난민은 한국인과 그 가족, 그리고 월남인을 비롯한 소수의 외국인이다.
먼저 한국인과 그들의 월남인 처 및 자녀들의 경우, 이들은 대개 여권법 및 출입국 관리법상 하자가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이들은 거의 유효기간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 여권이 실효 된 사람들이요, 또 그들의 월남인 처나 자녀들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 이런 절차문제를 가지고 이들을 괴롭게 할 때는 아닌 것이다.
이들은 모국에서의 생활기반이 미약하거나 활동 분야가 없었기에 자립의 기회를 찾아 이국 땅에 가서 천신만고한 사람들이다. 출국 당시의 희망도 기대도 여지없이 깨어져 실의와 수치심과 불안감만 안고 돌아온 지금의 처지는 동정을 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이들이 다시 밟게 된 고국 땅에서 소외감에 빠지지 않고, 삶에 대한 용기를 되찾아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은 우리 국민의 전통적 동포애의 당연한 발로일 것이며 모두가 응분의 성의를 쏟아 이들에게 따뜻한 구호의 손길을 뻗는 것은 슬기로운 국민으로서의 도리이다.
또 이들 가운데에는 한국에 있을 본래의 가족과 월남인 처 또는 그 자녀들을 놓고 가정적 갈등을 일으킬 소지를 가진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극한상황에서 탈출해 나온 이들의 개인적인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도록 중재하고, 이들에게도 적절한 생계의 길을 주선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해 매우 절박한 당면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가정과 인륜의 근간에 관계되는 문제이니 만큼 적지 않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아나 이럴 때일수록 「인간관계」 전문가들의 귀중한 조언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월남인 및 외국인 난민도 흔쾌히 수용하는 도움을 세계를 향해 보여줘야 할 것이다. 「접빈객」과 「과객」 접대를 미덕으로 삼아온 우리 민족인데, 정착 할 곳도 없는 망국 유민들, 더욱이 반공전선에서 함께 싸운 월남인 유민들에 대해 냉담하거나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전통적 도의심과 민족적 긍지에도 위배되는 행위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만이 월남 전쟁의 궁극적 책임을 져야할 미국인들과 인접 여러 나라의 국민들에게도 인도주의적인 월남난민 처리에 관해 응당한 양심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한국민의 공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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