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채권시장 3년 호황 끝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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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이라크전쟁이 시작되면서 3년째 이어지고 있는 미국 채권시장의 랠리(호황)가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BW)는 최신호(3월 31일자)의 '이라크전의 첫 피해자-미국의 채권시장'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이라크전이 최악으로 끝나지 않는 한 이라크에 대한 첫 공습으로 미국 채권시장의 랠리는 끝난 것 같다"고 보도했다.

최근 3년간 미국 증시가 침체된 탓에 여윳돈이 채권시장에 몰리면서 국채.회사채 장기 이자율은 그동안 3%포인트 가량 하락했다.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채권 값이 오른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전이 신속하게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21일(현지시간) 미국 증시는 폭등했으나 국채 수익률은 크게 올랐다.

10년짜리 미 국채 수익률은 이날 4.11%로 상승, 1월 13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30년물의 경우 5.04%, 2년물은 1.79%로 각각 올랐다. 10년물 수익률은 한주간 0.4%포인트 올랐고, 특히 속전속결의 기대가 형성된 지난 10일 이후로는 0.54%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미국 채권가격의 하락세는 이라크전의 발발로 불확실성이 제거된 데 따른 단기적인 효과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미국 금융시장에서 중장기적인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BW는 이에 대해 "이라크전은 그저 채권값을 끌어내리는 촉매 역할을 할 뿐이며, 미국 경제의 대내외적 경제여건 자체가 이미 채권시장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풀이했다.

국제 금융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이유 때문에 앞으로 상당기간 미국에서 채권 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커지는 쌍둥이 적자=미국 연방 및 지방정부가 추진 중인 재정적자 해소대책 때문에 채권 수익률이 전반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많다.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미국 정부가 국채 발행을 늘리면 국채수익률이 높아지고, 자동적으로 회사채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2%에 이르고 있으며, 재정적자도 GDP의 4%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금 당장은 경제가 나빠 기업이나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이 그럭저럭 시장에서 무리없이 소화되고 있지만 일단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고 연방정부가 이라크전 등으로 인한 추가적인 자금 수요로 국채를 더 발행하기 시작하면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처럼 돈을 빌리기 위해 민간과 정부가 각축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BW는 이라크전이 속전속결로 끌나 올 하반기부터 미국 경제가 회복조짐을 보일 경우 장기 이자율은 2004년까지 견조하게 상승세를 탈 것으로 전망했다.

◆뛰는 수입물가=미국의 수입물가가 최근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점에 경제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2월 중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핵심 원자재 수입물가는 전년 동월에 비해 15%나 급등했다.

최근 2년간 별 움직임이 없었던 완제품 수입물가도 달러 가치가 지난해 최고치 대비 13% 하락하면서 1.6% 올랐다. 문제는 이 같은 물가 오름세가 중장기적인 추세로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입물가 오름세는 최근 2년래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라크전이 끝나 유가의 오름세가 수그러질 경우에도 전반적인 물가오름세가 꺾일 것 같지않다는 얘기다. 국제 석유시장의 수급요인으로 인해 전쟁 이후 유가가 급락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제품 가격을 올려 생산비 증가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 경기가 좋아져 제품이 종전처럼 팔린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기업은 각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금융시장을 더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증시가 나쁠 경우엔 채권을 더 발행할 수밖에 없고 채권 수익률은 올라가게 된다. BW는 미국 연방정부의 경상수지 적자폭 확대로 달러 가치가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큰 만큼 향후 수입물가는 더 오르고 기업의 채권 발행이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임봉수.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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