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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박재능<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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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4면

완성된 한편의 시보다는 미완성된 것이라도 문제성을 지닌 시가 나로서는 한층 관심이 쏠린다. 완성된 작품의 경우 그 자체가 왈가왈부할 필요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 수 있는 반면, 미완성된 경우는 새로운 시도이거나 모험적인 문제성을 내포함으로써 보다 발전적인 가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근간 우리 시에서는 점차 시적 소재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현실 위주적 상황의식이 시인의 내면적 「픽션」으로 변질되어 간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한계가 왔을 때, 시인이 찾는 자기세계의 순수의식이 대두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본래부터 가져야 했을 시의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향이라고나 할까.
김춘수의 『이중섭』(현대시학), 한성기의 『산』(월간문학), 조봉제의 『비가 내리는 세월』(현대문학), 이성교의 『편지』(시문학) 등은 시점의 「모티브」는 현실이지만, 현실과는 외면한 「이미지」를 구사한다. 모두가 완성된 경우라기보다는 미완성된 문제성을 지닌 경우로 보는 쪽이 좋을 것이다.
김춘수는 비교적 자기 체취적이라 할 만한 농도 짙은 「에고」적인 정서의 취향을 이 달에 보이고 있는데 『이중섭』은 지적인 마무리가 필연적 구성을 갖고는 있지만 추상성이 심하여 독자들의 감내가 그의 내면세계까지 도달할까 의문이다. 「까마귀」와 「아내」의 유추가 납득될 선행적인 「이미지」의 제시가 없기 때문에 독자는 그저 어리벙벙하다 만 격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과의 거리를 둔 자기 순수의식의 문제를 다분히 안고 있다고 본다.
한성기의 담담한 「리리시즘」은 여전하지만, 이 달에는 조형적 시도를 해 보이는 것도 같다. 「아내에게 보이는 길이/내게는 보이지 않는다.」의 묘구를 지닌 『산』은 그의 과거의 단순성을 탈피한 인상도 드러낸다. 단순한 직시가 한계를 가질 때, 새로운 모색의 자세로 돌이키는 경우라고나 할까.
조봉제의 경우는 「이미지즘」적 취향에서 한결 「리리시즘」으로 더욱 굳어진다는 느낌이다. 자신의 「팬터지」가 「이미지」로 펼쳐지지 않고 관념어로 토로되고 있다. 그것이 덜 소화된 채 둔탁한 관념이 그대로 나열되고 있지만 「리리시즘」을 그 위선으로 본다면 절제를 이끄는 시인의 저력이 여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교는 조봉제의 관념어를 해소하는 미세한 관념의 연결이 드러나고 있지만, 언어 기교가 다소 무리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편지』는 그러나 그의 서정적 향토의 일면을 여실히 느끼게 하며, 「어머니는 밤마다/호롱불 밑에서/전신주 우는소리를 듣고/눈물을 흘렸다」 등의 호흡은 긍정적으로 들린다.
황금찬의 『문리대 앞,「마로니에」를 보고』(월간중앙), 인태성의 『섬』(월간중앙). 박진환의 『대숲 아래서』(현대문학) 등도 「패턴」은 자기세계의 순수의식으로 문제성을 내포한다. 황금찬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가 있지만, 그의 서정적 견지에서만 본다면 『문리대 앞 「마로니에」를 보고』는 서구적 호흡에 의한 즐겁게 읽히는 서정시라 할만도 하다. 인태성의 『섬』은 자기 이념적 「픽션」의 「섬」에 대한 묘사이며 박진환의 『대숲 아래서』는 순연한 「리리시즘」적 흐름이 부드럽게 읽히는 것이 되고 있다.
이규호의 『무등아, 무등아』(현대문학), 신중신의 『신 출애급기』(시문학), 오세영의 『바람이여』(현대시학), 유승우의 『지나가는 빛』(시문학) 등도 현실과의 거리를 둔 자기 순수의식적 세계를 찾고 있다. 오세영의 『바람이여』 는 단순한 서정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길섶의 시든 풀잎 위에 부는 바람도/한 때는 열정으로 타던 불길인 것을/불은 불대로, 물은 물대로/있는 것들을 있게 하여라」 등에서 보이는 존재론적 관념이 그것이며, 이규호의 『무등아, 무등아』는 박력 있는 「톤」과 더불어 스스로가 발굴한 언어실험적 상황이 내면의식을 드러낸다. 많은 실험에 의한 화술의 묘를 한층 활발하게 제시해 내고 있다.
이밖에 마종하의 『우리들의 힘』(문학사상), 김승희의 『천왕성으로의 망원』(심상), 『완벽을 위한 날개 짓 소리』(심상)등이 이러한 관점으로 언급될 문제들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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