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 박히지 않은 기풍…무한한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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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박동순 특파원】조치훈군의 바둑내용을 두고 중반전 이후의 완력이 두드러지고 「프로」기질이 끈질기며 승부운이 좋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정작 조군과 맞닥뜨렸던 기사들은 그의 바둑에 균형이 잡혀 있으며 아직 고정된 틀에 박히지 않은 기풍으로 발전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일본 바둑계의 정상급인 임해봉·「이시다」(석전)· 「사까다」(판전)등이 보는 조 6단의 바둑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았다.
▲임해봉 십단=너무 급속히 성장해 왔기 때문에 실력이 붙어 온 과정을 잘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하루아침에 초일류가 되어 버렸다는 느낌이다.
6세의 치훈군과 처음 대면했을 때 치훈군이 키가 작아 방석을 몇 장이나 겹쳐 쌓아 놓고는 그 위에 올라앉아서 두자는 데는 놀랐었다.
중앙일보에 연재되는 수기(제3회)에서 당시 내가 치훈군이 어리다고 적당히 두어 준 것 같다고 치훈군이 썼다고 들었으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얘기고 완전히 내가 진 바둑이었다. 그때 느낌으로는 치훈이는 성격이 극히 맑은 아이였고 장래가 두렵게 느껴졌다.
바둑은 특히 중반이후가 세고 균형이 잡힌 바둑이며 결실이 거의 없다. 굳이 결점을 말하라 한다면, 그리고 치훈군의 장래를 위해 욕심을 부린다면 포석에서부터 중반까지가 좀 더 강해졌으면 하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천하에 치훈군을 당할 자가 없게 되니 일본의 기계는 재미가 없어지지 않겠는가. 「가또」(가등정부)와는 재미있는 승부가 될 것으로 봤고 일방적으로 이길 줄은 몰랐다. 다만 이번에 일방적으로 이겼더라도 「가또」는 치훈이가 앞으로 유의해야 할 적수가 될 것이다.
▲「이시다」(석전방부)명인·본인방=어릴 때부터 실력 이상으로 잔수를 아주 잘 보았다. 치훈이가 일본에 와서 반년쯤 됐을 때 내가 입단했기 때문에 원생시절의 치훈이와 그렇게 많이 대국할 기회는 없었고 도일 후 1년 반쯤 되어 「기다니」(목곡보) 선생이 병이 났기 때문에 「기다니」선생의 직접 지도도 별로 받지 못했던 걸로 안다.
나이에 비해서는 반발심이 강한 애였다. 그래서 선배 말도 잘 안 들었는데 다른 사람 같으면 선배들한테 꽤 많이 얻어맞았을 터이나 너무 꼬마라서 모두가 참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면서 솔직해지고 행동도 어른스러워 졌다.
바둑은 세력위주인 「다께미야」(죽궁) 7단, 힘이 센 「가또」와는 다른, 굳이 표현한다면 나와 비슷한 「타입」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만 아직도 치훈류의 바둑형이 굳어져서 어떤 틀 안에 고정되어 버리지 않고 폭이 넓은 바둑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디까지 발전할지 예상할 수 없는 정도다.
이번 「가또」와의 대국은 선배인 「가또」쪽이 다소 거북한 점이 있었잖나 생각된다. 치훈이의 강한 승부운과 집념에는 손들었다.
앞으로 치훈이는 「타이틀」을 쉰 정신적 압박감을 극복해 가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실력은 대단하며 그 점에서 이번에 「타이틀」을 딴 것은 당연하다.
▲「사까다」(판전영남) 일본기원 선수권자=요즘에 눈에 띄게 바둑이 충실해졌던 만큼 멀지않아 「타이틀」을 따리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나한테 진 후 불과 두 달만에 따리라고는 상장조차 못했다. 바둑은 극히 집요하며 특히 중반서부터가 매우 끈기 있고 「프로」다운 점이 있다.
나한테 3연패했을 때는 내가 운으로 이긴 것이다. 특히 제4국은 치훈이의 실수로 주운 것인 만큼 내가 이긴 축에 들지 않는다.
인간이 두는 바둑인 만큼 「스타트」에서 내용이 잘못 될 수도 있지만 치훈이는 그러한 불리한 바둑을 역전시켜 이겨 버리는 훌륭한 「프로」근성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치훈이의 이러한 「프로」근성을 본받아야 한다.
내가 충고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린 나이 치고 정말 놀랐다. 지금 일본기원은 내부사정이 여러 가지로 복잡하지만 치훈군은 그러한 것에 현혹되지 말고 오로지 바둑 일념으로 노력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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