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목소리' 왜 잡히지 않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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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해 3월 6일 경기도 시흥경찰서 대출사기전담팀은 대구 대명동의 한 오피스텔 사무실을 급습했다. 이 사무실에는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원 6명이 전화 사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들 사이에서 일명 ‘콜센터’로 불리는 곳이다. 사무실에선 보이스피싱용 멘트가 적힌 문서들이 발견됐다. 경찰은 기업은행을 사칭해 43명을 상대로 대출 보증료 명목으로 1억3600만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로 총책 김모(35)씨를 구속하고 중간 관리자 등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사실 이날 경찰이 보이스피싱 콜센터를 적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경찰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보이스피싱 범죄 1만4745건을 적발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절대 다수는 인출책 등 하부 조직원이 붙잡힌 경우다. 총책이 직접 관리하는 콜센터가 적발된 것은 전체의 약 0.1%(20건)에 불과했다. ‘그놈 목소리’의 실제 배후는 잘 잡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보이스피싱의 총책 등 핵심 조직은 왜 검거가 힘든 걸까.

 보이스피싱 조직은 역할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이뤄진다. 실제 전화를 거는 작업이 진행되는 콜센터와 대포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이를 2~3분 내에 인출하는 인출책, 대포통장을 만드는 개설책 등이다. 경찰에 따르면 콜센터가 70%, 인출책이 30%씩 수익을 나눈다. 개설책은 통장 하나당 20만~40만원씩 가져간다고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가는 핵심 조직인 콜센터가 대다수 중국에 있다는 사실이다. 경찰이 국내 인출책과 개설책을 붙잡아도 더 이상 수사가 진행되기 힘든 이유다.

 서울 강북경찰서 지능팀은 지난해 하반기에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인터넷 전화번호 수십 개를 발견했다. 통신사 측에 가입자 정보를 요청한 결과 가입자는 모두 중국인이었다. 수사팀은 즉시 경찰청을 통해 중국 공안에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4개월이 넘도록 회신이 오지 않았고 수사는 중단됐다. 경찰 관계자는 “중국에 있는 총책은 콜센터를 여러 개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인출책 등이 잡히더라도 얼마든지 다시 범죄를 기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공안과 공조 수사를 통해 보이스피싱 조직을 적발한 경우는 2009년과 2012년 단 두 차례에 불과했다.

 콜센터가 한국에 있더라도 대부분 한두 달에 한 번씩 장소를 옮겨 경찰 추적을 따돌린다. 지난해 11월 서울 용산에서 붙잡힌 보이스피싱 일당은 검거를 대비해 6월부터 11월까지 세 차례 사무실을 옮겼다. 또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추적이 아예 불가능할 때도 많다. 최근에는 노숙자를 이용해 대포통장을 만드는 게 아니라 대포통장을 만들기 위한 보이스피싱을 별도로 하기도 한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지난달 27일 궈성쿤(郭聲琨) 중국 공안부장을 만나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 공조 등을 포함한 치안협력 양해각서(MOU) 개정에 합의했다. 경찰청은 또 보이스피싱 범죄 근절을 위해 대포폰과 대포통장 등에 대해 지난달 24일부터 특별 단속을 벌이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대포통장을 제공했다가 잡혀도 벌금 100만~200만원에 그치는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화·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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