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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3)<제45화>상해임시정부(28)|조경한(제자 조경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무고극의 폭로>
내가 오종수 앞으로 다가가자 재판정 주변에는 긴장감마저 돌았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오에게 이번 사건의 고발은 모두 공산분자들의 사주에 의해 조작된 무고임을 고백하라고 다그쳤다.
나는 공산분자들의 수법을 낱낱이 설명하고 당신이 지금 비록 그들의 사주대로 일시 이용을 당하다가도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숙청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나의 진지한 충고에 귀를 기울이던 오가 마침내 자기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서 흐느껴 울더니 『재판장님, 제가 무고를 했읍니다』라고 자백을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법정에는 찬물을 끼얹는 듯한 고요가 잠시 흘렀다.
이윽고 다시 고개를 든 오는 순수히 자신의 죄과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공산분자들의 위협과 공갈 속에서 살아왔다. 7, 8월은 독립군의 보호로 무사히 지낼 수 있었으나 9월 초순부터 공산당들이 암암리에 공갈을 가해오기 시작하여 10월 초순에는 나의 이웃인 「전덕원」이란 자가 웬 낮선 젊은이 한 명을 데리고 와서 무송에 사는 김기성이라고 소개했다.
전덕원은 김기성이 이곳 농장에 와서 내년 농사를 지을까하여 농장주관자인 나에게 소개를 시켜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군이 돌아가고 김군과 단둘이 있게되니 그가 품속에서 편지 한 통을 끄집어냈다.
수취인은 나로 돼 있고 발신인은 「반일특공대본부」로 되어있는 이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동무는 용감하고 지모도 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시킨 사명ㅇ형 잘 실행하면 전일의 피차 오해를 일소함은 물론 동무를 공로 높은 자로 대우하여 생명·재산을 보호해줄 것이요, 만약 사명을 실행하지 않으면 멀지 않아 처벌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오사령부의 주참모와 연결하여 적화공작을 펼쳐 나가는 과정인데 별지에 쓰인 고발장을 자필로 다시 써서 김군에게 다시 주도록 하라.」
나는 이 편지를 읽고 얼마동안 망설이다가 할 수 없이 그대로 실천했다.
오의 자백이 끝나자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오의 자백이 계속되는 동안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이던 재판관들은 마침내 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독립군장교 3백여명중 내가 제1착으로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나는 나와 함께 갇혀있던 감방의 동지들에게 안심하라는 위로를 한 뒤 곧장 독립군사령부로 달려갔다.
군의관 신흘과 사병 수백명이 그래도 군기를 잃지 않고 절도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날 밤 우리동지들과 모처럼 술자리를 같이하여 회포를 풀고 있을 때 돌연 구국군의 사령 7, 8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갖은 주효와 담배·설탕·과자를 갖고 와서는 나의 석방을 축하해 주었고 나는 그들의 노고를 치하한 뒤 곧바로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했다.
이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오의 무고자백에 따라 사건은 의외로 쉽게 풀릴 전망이며 앞으로 1주일만 있으면 형식적인 심문을 마치고 재판관들이 오사령에게 판결내용을 품신한 후 최후결재를 받아 선고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선고내용도 독립군장교들에게는 모두 무죄, 무고죄에 해당하는 오종수에게는 벌금형을 물릴 예정이라는 것이다.
내가 주「마즈」는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고 물으니 그 문제는 오사령이 직접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때 주철생이 『주「마즈」의 진상을 폭로하여 주와 관련자인 「반일특공대」란 공산집단을 엄중 처단토록 진언하자』고 제의했다.
나는 이들에게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자면 사전에 법관들의 진술조서를 보다 자상하게 서술하고 많은 수의 구국군 장교들이 주「마즈」성토에 참여할 것과 당분간은 계속 주「마즈」를 술과 마작으로 유인해둘 것을 당부했다.
또 나는 이와 병행하여 독립군자체의 진술서를 오사령에게 제출할 것임을 그들에게 밝혔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자 구국군 총사령부회의가 10월24일 소집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이때부터 오사령에게 보낼 진술서작성에 들어갔다.
영문만으로 작성된 이 진술서는 내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해서 공들여 작성했다.
그 내용은 주로 독립군과 중국 손중산 및 장개석 총통과의 유대관계로부터 시작하여 만주일대에서의 항일전투경과를 자세히 기록하고 특히 최근 준동하기 시작한 공산분자들의 악질적인 행위를 폭로, 규탄하는 것이었다.
말이 진술서지 사실은 탄원서와 같은 성격을 띠어야겠기에 나는 오사령의 기분을 돋울만한 갖은 미사여구와 칭찬을 곁들여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나는 이 진술서를 즉시 구국군사령부로 보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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