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세에 밀릴 미국세|키신저 중동 협상 실패의 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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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키신저」의 중동 협상 능력이 실패에 돌아감으로써 초래될 즉각적 영향으로 73년10월 전쟁이래 이 지역에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던 소련세 퇴조·미국세 고조의 외교적 양상을 극적으로 역전시키게 될 것 같다. 지난 전쟁이래 중동의 평화 노력은 「키신저」의 소위 단계적 방법과 소련 및 「아랍」 강경파들의 일괄 타결 안의 두 가지 접근 방법을 그 저류로 하여 진행되어 왔다.
1차 협상에서 「키신저」는 먼저 「시나이」 전선에서 부분 철군을 성공시킨 다음 「골란」 전선에서 「시리아」 「이스라엘」간의 휴전을 성립시킴으로써 그가 주장하는 단계적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점을 일단 입증했었다.
그의 표면상의 지론은 중동 문제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쉽고 가능한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 나감으로써 가장 어려운 문제, 즉 「팔레스타인」 민족의 사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뒤에 풀리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와 같은 방법은 「이스라엘」의 존재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을 하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중동으로 뻗는 것을 반대하는 「시리아」 「리비아」 「팔레스타인」 해방 전선 등 「아랍」 세계 강경파 국가들로부터 근원적인 불신을 사왔다. 이들은 「키신저」가 중동 사태의 현상 고정을 위해 지연 작전을 시도하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어쨌든 「키신저」의 외교 노력이 이러한 저의 말고도 소련의 영향력 만회를 저지하려는데 주목표를 둬왔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키신저」의 단계적 접근 방법은 협상이 2단계로 접어들면서 현실적으로도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핵심이 되는 이유는 협상이 휴전과 같은 단순한 군사적 문제에서 교전 당사국의 영토 및 앞으로의 안보 문제와 같은 정치 문제로 발전했을 때 「아랍」 국가들의 단결, 미·소 등 후견국들의 영향력의 균형 같은 외부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데서 연유되었다.
「아랍」 국가들이 「키신저」 협상에 대해 가장 경계한 점은 그가 소위 「단계적」으로 「이집트」에서 대 「이스라엘」 부전 선언을 얻어낸 다음 「시리아」「요르단」을 차례로 각개 격파하여 지난번 전쟁에서 이룩한 「아랍」권의 단결을 파괴하려하고 있다는 의혹이었다. 이와 같은 의혹은 「이집트」에 대한 나머지 「아랍」 국가들의 압력으로 작용했다.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결국 「아랍」권에서의 소외를 무릅쓰면서 「키신저」의 「단계적」 방법을 따르는 것이 불이익임을 인식, 「키신저」의 노력을 최종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키신저」의 노력이 실패함으로써 곧 전쟁이 재발하리라고 예고하고 있지만 그와 같은 예고가 지닌 이론상의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전쟁이 폭발할 가능성은 당장에는 없다.
그보다 먼저 소련이 주도권을 잡게될 「제네바」 회담이 열리고 「팔레스타인」 대표를 포함한 모든 「아랍」 당사국들이 모인 이 국제 회의에서 중동 문제의 일괄 타결 방안이 모색될 것이다.
「키신저」의 비판자들은 소련과 「아랍」 강경파들이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그와 같은 회의가 지난 중동전의 결과로 형성된 중동의 새로운 세력 균형을 훨씬 더 정당하게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을 들어 그것이 지금까지의 「키신저」의 독주보다 중동 사태의 영구적 해결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와 같은 회의는 또 동남아 사태와 미국 의회의 분위기로 초래된 「키신저」 및 미국 외교 능력 약화를 반영하는 필연적 결과이기 때문에 이제 중동 문제 해결을 위한 「이니셔티브」는 소련과 「아랍」 강경파 측으로 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중동 문제 해결의 전망이 반드시 밝아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해결을 위한 협상의 형태는 보다 타당성을 띠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장두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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