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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가「유럽」을 흔들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오늘의「유럽」은 1930연대의 불안기를 닮아 가고 있다. 의회민주주의의 무력과 한계가 노출되면서 극단주의와 혼란이 만성화하고 있는 것이다. 「인플레」니 실업이니 생계비앙등이니 하는 따위의「재앙」에 대해서 기성정당과 집권자가 이렇다 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정치경멸이 틈만 있으면 좌우의 극단주의를 대두케 할 소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경향은 지금「도버」해협의 양안과「지브를터」로부터「발칸」반도의 끝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인 현상으로 돼 가고 있다.
최근만 하더라도「그리스」에서 우익군정을 복고시키려던「쿠데타」가 적발되기가 무섭게「포르투갈」에서는 좌경군부가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스페인」에서는「점진적인 자유화」가 약속되기는 했으나, 정치권 밖의 세력이 급진 화함에 따라 언제 다시 결빙기가 되찾아 올는지 모를 형세에 있다. 또 그런가 하면「이탈리아」의 경우도 사태는 마찬가지로 심각하다. 며칠 전 만해도 2백만 명의 노조원이 금년 들어 세 번째의 총파업을「로마」에서 벌였다.
작년「크리스마스」이래 음식값이 50%나 뛰어오른「이탈리아」의 유권자들은「법과 질서」를 호소하는「판파니」수상을 외면한 채「뭇솔리니」시절이나 노조 쪽으로 눈길을 몰리는 세태라고 한다.
「프랑스」나 서독·영국 같은 선진적인 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모두가「인플레」· 실업·연료 난·불경기 등「춥고 어두운 겨울」을 해동시킬「정치의 능력」을 찾지 못한 채 공전을 거듭하는 실정이다. 심지어 선거란 「누가 더 인기가 없느냐를 가름하는 행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유권자」가「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지도자」를 뽑는데 불과하게 됐다는 혹평마저 듣는다.
때문에 민주주의의「문제해결 능력」을 증언하던 서구의·제 국가들이 어째서 이처럼 좌경군부나 우익군정 또는「하이재킹」·유괴·파업·시위·투탄 등 민주주의의 능력부재를 드러내게끔 되었느냐 하는 점은 중대한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가난하다고는 하지만, 어째서「포르투갈」과 같은 전통적인 서구국가에서 좌경군부가 대두하게끔 되었는가. 이것은 비단「포르투갈」하나만의 특수현상 이라기보다는 모든 서구 국들이 함께 반성해야 할 전후민주주의의 병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전후 서구의 지도자들은 지금까지「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핵전쟁을 회피하는 데엔 성공했지만 식량난이나, 석유부족 또는 자원이나, 복지 등 일상사를 다루는 데엔 신통력을 잃은 것이다.
현대의 산업·통신·교통·전쟁의 제 기술과 운영방식은 전후민주주의의 정치적 조개능력을 노후화 할이 만큼 앞지르고 있다. 정당이나 정부는 예컨대 강철회사의 가격인상이나 노조의 정기인상 요구 파업에 대해 속수무책이라는 점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정부나 정당지도자가 시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 복지와 안정된 생계를 보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시민의 불만은「누가 당선되건 매일반」이란 좌절감을 낳게 하고 결과적으로는 기성정치체제를 거부하는 정치적 행동주의로 기울기가 쉬운 것이다.
대중의 합리성과 도덕심을 기초로 하는 민주정치가 대중의 비합리성과 맹목적·선동적 행동주의에 위협 당할 때, 거기엔 반드시 진공적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이제 그 진공을 군부 좌 우파의 연쇄격돌로 메우고 있는「포르투갈」의 정 정은 다른 모든「유럽」국들이 당면한 불안한 전도를 예고하는 서곡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서구민주주의를 지탱한 합리적 시민정신만이 광기와「테러」가 고개를 쳐드는 오늘의 서구일각을 치료하는데는 그래도 유일한 최선의 통치원리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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