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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롤모델은 수퍼맨 … 뭐든 도전하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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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개그맨 출신 배우 이동우. 연극 ‘내 인생의 수퍼맨’ 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그는 “초등 2학년인 딸 지우를 기르면서 느꼈던 소중하고 귀한 감정, 부성애를 무대 위에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수퍼맨이 되고 싶어요. 가치있는 일이라면 결과에 확신이 없더라도 망설임 없이 출동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요.”

 시각장애 개그맨 이동우(45)씨의 롤모델은 수퍼맨이다. “되든 안되든 도전하는 용기를 배우고 싶어서”다. 그는 지난해부터 ‘수퍼맨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그동안 재즈 앨범을 냈고, 단독 콘서트를 열었고,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했다. 그리고 프로젝트 마지막 미션인 연극 무대에 선다. 다음달 8일부터 4월 6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공연하는 연극 ‘내 마음의 수퍼맨’의 주인공을 맡았다.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은 뒤 고향으로 내려가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왕년의 유명 배우’ 역이다.

 20일 서울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착한 연극’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착한 연극’은 “관객들이 보고 난 뒤 마음이 따뜻해지고, 꼬인 관계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가족의 의미를 한번 더 되새기게 되는 연극”이다. 그는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을 모두 쏟아부어 아프고 쓸쓸한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져주고 싶다”고 말했다.

 홍록기·표인봉 등과 함께 ‘틴틴파이브’에서 활동했던 이씨는 2004년 발병한 망막색소변성증으로 2010년 실명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가 연극 무대에 서려면 남보다 네다섯 배는 더 긴 시간을 써서 연습해야한다. 우선 대본 외우는 것부터 문제다. 그는 점자를 읽을 줄 모른다. 대신 컴퓨터 음성 전환 프로그램을 활용해 듣고 또 듣는다.

 무대 위에서의 동선도 머릿속에 정교하게 입력시켜 놓아야 한다. “1∼2도의 각도 차만 나도 엉뚱한 움직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연습하면서 넘어지고 부닥쳐서 안경이 부러지고 손이 삐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슴 먹먹할 얘기를 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밝았다. “앞이 안 보여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무대 위에서 쓸데없이 긴장하거나 초조해 하는 일이 없어졌다. 무서울 때 왜 눈을 감는지 알게 됐다”면서 소리내 웃기도 했다.

 그가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데는 5년의 세월이 걸렸다. 2004년 발병 사실을 알고 분노와 절망에 묻혀 살았다. 두피관리사인 아내와 아홉 살배기 딸 지우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그를 일으켜세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무게가 90㎏까지 불어나 있더라고요. 자포자기한 마음에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면서 폭식하고 술 마시고 그랬거든요.”

 2009년 그는 자신의 장애 사실을 공개했고, 매일 두 시간씩 운동을 시작했다. 3개월 반 만에 20㎏이 빠졌다. 그는 “내가 바뀌자 지옥 같았던 인생이 선순환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면서 “신비로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무한긍정’ 에너지를 전하는 그가 인터뷰 도중 얼굴이 굳어진 때가 있었다. 핸드폰 이야기를 하면서다.

 “시각장애인용 2G 핸드폰이 단종이 됐어요. 통화도, 문자도, 음성 책 듣는 것도, 자유자재로 되는 핸드폰이에요. 이젠 시각장애인도 스마트폰을 쓰라 네요. 사용법을 보니 너무 복잡해서 절대 시각장애인은 못 써요. 지금 갖고 있는 핸드폰이 고장 나면 어쩔지 막막합니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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