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반문화 단체들(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파리=주섭일 특파원】반문화적 성격을 지닌「비밀사회」의 예는 많다. 「파리」16구에는 인간의 족 적을 남기는 모든 것에 대한 반대투쟁을 벌여 순수성을 되찾는다는 화상파괴주의자들의 모임도 있다.
『「이미지」예찬은 세계상실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우리들은 우리들이 살아온 모든 자취를 지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현대에 있어서 최대의 악마는 사진이라고 단정하며『만일 인간이 사진을 찍는다는 위험 의식을 갖는다면 한 통의「필름」은 바로 하나의 권총과 똑같은 공포를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이들은「파리」가 자랑하는 인간박물관 곁의 한「호텔」을 본거지로 삼고 있다. 약 60명의 회원들이 주말에 모이면 두목은 미리 준비한 화덕에 불을 붙인다. 맨 먼저 화원들이 부패·부정·비 순수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갖고 온 잡지를 화덕 속에 집어넣고 태워 버린다.
수많은 출판물이 잿더미로 바뀌며 피어나는 연기 속에서 울려 나오는 주문-.
『우리들의 행동은 영혼을 되찾는 것이다. 사진을 방치한다는 것은 인간의 마지막「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이들은 이어 차례로 주문을 외며 미리 마련한「없애야 할 사진들」을 한 장씩 화덕에 던져 태워 버리는 의식이 계속된다.
이들이 태워 버리는 사진들 중에는「브리지트·바르도」「사르트르」「마거리트」공주 「드브레」전 불 수상 교황「바오로」6세 등의 사진이 포함돼 있다. 그들 자신의 사진을 태우는 것은 물론이다.
『달(월)은 동식물의 털과 같은 경향이 있다』는 것은 월 숭배자들의 주장. 이들은 무엇보다도 순수성의 회복은 지상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안되고 지구외적인 방법밖에 없다면서 『우리들은 월 축에 기반을 둔다』고 말한다. 물론 비슷한 것으로는 일축에 기초를 둔다는 태양 숭배자들도 있으나 대동 소이.
그래서 이들은 주말이면「파리」에서 멀리 벗어나 유명한 관광지인「풍텐블로」숲 등에서 모임을 갖는데 장소는 자주 바뀐다. 숲 속에 모인 회원들은 모두들 옷을 벗어 팽개치고 「플롯」가락에 맞추어 춤추며 보통 사람은 이해 못할 원시적 가락을 합창한다.『달밤에 체조』가 아니라『달밤에 벌거벗고 춤춘다』는 식이다. 『나는 숲 속에서 밤새워 밤의 진행과정을 관찰한 결과 놀랄 만큼 털투성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이 비밀단체 창설자는『순수성을 되찾는 방법은 털을 기르는 것이며, 면도를 하는 사람은 부도덕하다』고 주장한다.
밤새워 몽롱한 상태에 빠져 달이 질 때까지 노래와 춤을 계속한 후 동이 틀 무렵 옷을 주섬주섬 찾아 입고「파리」로 돌아오는 월 숭배자들의 마음은 한결같이「순수한 정신상태」(?)라고-. 그들은 이 순수상태를 보호하기 위해 수염을 길러 모두가 털보들이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지만 이제 20세기말의 세계는 돌아갈 자연마저 없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주장. 『지상에서는 순수를 되찾을 방법이 전혀 없다』는 이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듯 하다.
인간의 육체를 좀먹어 가는 공해, 인간을 부속품화 해 버리고 만 기계문명의 발달, 처녀성이 거추장스러우며 오히려 수치라는 부도덕… 이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순수성」은 없다. 이 같은 비밀단체라는 몸부림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군소 신앙 인들을 볼 수 있으며 서구인들의 반문화적 성격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