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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화려한 과거를 잊어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뉴질랜드에 가면, 키위라는 새가 있다. 이 새는 앞을 보지도, 날지도 못한다. 서식하는 지역이 화산 지대인 까닭에 뱀이나 파충류 따위의 천적이 없는 반면, 먹이는 풍부해서 굳이 날아다닐 필요가 없어 날개와 눈의 기능이 퇴화된 결과라고 한다.

주어진 현실 여건에 안주하다 보면 발전은 커녕, 본래 갖고 있던 능력마저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미국의 컴퓨터 공학자,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는“지금껏 항상 그렇게 해왔어”라는 말만큼 우리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없다고 한다. 간단한 실험으로, 영국의 철학자 앨런 워츠(Alan Watts)는 벽에 원을 그려놓고 무엇으로 보이는지를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대답은 그저‘원’이었다. ‘벽에 뚫린 구멍’이라거나 하는 등의 창의적인 답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에 대해 호퍼는‘바깥보다 안을 먼저 생각하는 획일화된 사고방식이 생각을 고정된 사고의 감옥에 갇히게 만든 결과’라고 보았다.

‘고정된 사고의 감옥’에 갇혀 낭패를 본 실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델은 무선 인터넷 발달로 경쟁사들이 가볍고 편리한 노트북 개발에 전념하는 동안‘저가의 데스크톱 PC’가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주었다는 생각에 묶여 그것의 생산에만 몰두하다가 휴렛팩커드에게 1위 자리를 빼앗겼다. 한때 렌터카 시장을 평정했던 허츠는‘주 고객은 여행자’라는 고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정비소에 차를 맡긴 후 렌터카를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수요를 간과하여 엔터프라이즈에게 추월당하고 말았다.

사람을 망각의 동물이라고도 하지만 화려했던 과거일수록 잊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오죽했으면 현대 경제학의 대부라 불리는 케인즈(Keynes)가“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게 하는 일이 아니라, 헌 아이디어를 잊도록 하는 일이다”고까지 했을까?

과거를 잊지 못하고 그 속에 안주하려는 경향은 병원이 그 어떤 다른 조직보다도 더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증상의 하나가 고객의 소리를 듣고 개선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내부의 규정이나 지침을 앞세워 고객을 설득하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연합보험회사의 설립자인 W. 클레멘트 스톤(Clement Stone)이 아주 적합한 예화 하나를 들려준다. 신발 시장을 개척하라는 사명을 띠고 아프리카 어느 오지로 가게 된 A와 B, 두 사람의 이야기다.

A는 현장 도착 바로 다음날 본사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낸다. ‘다음 비행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현지인은 모두 맨발로 생활합니다. 여기서는 신발이 팔릴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반면 B가 보낸 메일의 내용은 정반대였다. ‘지금 당장 신발 5만 켤레를 보내주십시오. 이곳은 신발을 팔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지인은 모두 맨발입니다.’ A와 B의 차이는 한마디로 사고의 시발점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둘은 다 똑같은 맨발을 보았지만 하나는‘지금껏 신발을 신지 않았던 과거의 맨발’을, 또 한 사람은‘앞으로 신발을 신게 될 미래의 맨발’을 본 것이다.

주어진 상황이나 사실에서‘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던 과거의 결과’를 보느냐, ‘그렇게 때문에 기회가 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보느냐의 차이. 생각의 근본이 다른,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러한 차이는 개개인이나 특정 조직에게‘선천적으로 주어진’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부지불식간의‘학습으로 형성된’사고방식에서 형성된다. 때문에 개인이든 조직이든 과거를 잊고 새로운 것을 학습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여하에 따라서 바뀔 수 있다.

GE의 잭 웰치(Jack Welch) 회장은“세상에는 두 종류의 기업만 있다. 변화하는 기업과 사라지는 기업, 그것이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미국의 유명 경영 컨설턴트 중의 한 사람인 톰 피터스(Tom Peters)는 1982년 펴낸「초우량 기업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우량기업 43개사를 선정, 잘나가는 이유 8가지를 꼽았다. 그랬던 그가 1987년에는 저서,「경영혁명」에서‘우량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음을 인정했다.

앞서 우량기업이라고 소개되었던 43개사 중 2/3가 파산했거나 인수, 합병되는 등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전문가 시각으로 엄선한 우량기업들조차도 불과 5년을 버텨내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 파산의 원인을 잭 웰치의 말에 대입해 본다면, 필경 변화에 소홀했거나, 제대로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세계적인 초우량기업들이 이럴진대 고만고만한 병원들에게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고 아직도‘과거의 맨발’에 시선이 가는 병원 경영자가 있다면‘미래의 맨발’로 시선을 옮기는 단초가 될지도 모를 다음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 찾기를 권한다.

❏나는 미래에 경영우위를 갖는 데 관심 있는가?

❏현재 나의 상대적 위치는 어디인가?

❏프로세스에서 가장 개선 효과가 큰 것은 무엇인가?

❏고객 불만에서 신속히 개선해야 할 부분 무엇인가?

❏나는 벤치마킹을 통해 개선의 분야와 방법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과거의 기억에 매인 부정적 사고에서 벗어나 긍정의 사고와 행동으로 옮겨가려면 어찌해야 할까? 사물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과 관련해‘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는 것이 있다.

지중해의 어느 섬에 살았다는 신화 속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야기이다. 오로지 조각에만 매달리던 피그말리온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만든 조각상 갈라테이아를 사랑하게 된다.

그는 매일, 그 돌 조각상을 껴안고 입을 맞추며‘이 조각상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 달라’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빌고 또 빈다. 그의 지성스런 기도에 감동받은 아프로디테는 갈라테이아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결국은 피그말리온의 실제 아내가 될 수 있게 해준다. 절대적인 긍정성을 가지고 간절히 원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소위, ‘피그말리온 효과’의 유래다.

병원에서는 어떤가? 조각상이 사람으로 변하는 효과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경영자를 포함한 직원 모두가 정확한 현실인식과 분명한 발전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분명히 하고 볼 일이다.

내부의 규정이나 지침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입장을 생각하는 직원 한 사람의 진심어린 마음이 전해진 뒤라야 기대에 부응하는 고객이 생겨도 생기지 않겠는가.

서울대 이면우 교수의「신사고 이론 20」을 보면“나의 현 생각이 1년 전 생각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지난 1년 동안 내 영혼은 영안실에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고 까지 얘기하며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스티브 발머(Steve Anthony Ballmer)도“고객을 만족시키고, 경쟁사를 이기는 유일한 해법은 혁신 밖에 없다”고도 했다.

귀가 따갑도록 들리는 변화 요구 속에서 설사, 시대를 앞서 가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상황 변화에 따른 신속한 대응조차 못하는 조직은 발달장애에 걸린 사람과 진배없다. 그리고 인체의 발달장애 원인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처럼, 기업과 병원조직의 정체나 쇠퇴의 원인을 진단하여 찾아내고 단정 짓기란 쉽지 않다.

더 더욱이나 그 진단을 스스로 한다는 것은 인체나 병원이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한 가지 다행스런 것이 있다면, 적어도 기업이나 병원의‘신경조직’에서 오는 이상 증상은 인체만큼은 복잡해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의‘임상실험’도 가능하지 않은가?


「때로는 병원도 아프다」- 병원이 받아야 할 마케팅 종합검진 저자(T.010-256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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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순 대표 기자 jssong4@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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