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맞은 미 희극작가「멜·브루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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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TV시청자나 영화 관객을 웃기려면 눈물을 흘리고, ,서지도 앉지도 못할 정도로 웃겨야 합니다. 건강에 해로울 정도로』-.
5세 때부터 남들을 웃겨 왔다는「코미디·스크립터」「멜·브루크스」(48)는 현재 미국 TV· 영화계의 희극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가 연출한 영화『젊은「프랑켄슈타인」』은「코미디」물인데도 불구하고 75년도「아카데미」상 후보작으로 올라 있고 미국 흥행계를 휩쓸고 있다.
「프랑겐슈타이」박사역을 맡은「진·와일러」의 말을 빌면「멜·부르크스」는 우리의 탐욕·불만·모순, 그리고 돈과 순결과 사랑에 대한 욕망을 꿰뚫어 본다. 그는 2백년후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코미디」를 만든다』고.
「브루크스」의「코미디」는 황당무계하고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다. 74년에 크게「히트」한 그의 영화『번쩍이는 말안장』(원명 Blazing Saddle)을 보면 주인공이 한 주먹에 말(마) 때려뉘기도 한다.
웃음에 대한 그의 원칙은 아주 간단하다. 『재미있으면 됩니다. 철학도 필요 없고 의미 심장한 것도 필요 없고 그저 재미만 있으면 됩니다』라는 주장이다.
「브루크스」가「코미디」계에서 입신양명하게 된 계기도 희극적이다. 「뉴요크」「브루클린」유대인 빈민가에서 태어나 비참한 유대역사를 들으며 가난하게 자란 그는 5세 때부터「사랑을 받기 위해 야박한 이웃을 웃겼고」14세 때는 밥을 벌기 위해「호텔」악단에서「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17세 때 2차대전이 일어나 입대, 공병으로「유럽」에서 복무하다가 전쟁이 끝나자 동시에 제대, 다시「드럼」을 쳤다.
어느 날「호텔」무대의「커미디언」이 병이 나자「브루크스」가 대신 맡게 됐다. 그는 자기 멋대로「호텔」하녀의 흉내를 내기로 작정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사숙녀 여러분!』「브루크스」는 벽장에 갇혀 발버둥치는 하녀의 목소리를 흉내내 크게 소리쳤다. 『날 놓아줘요!』
그는「커미디언」으로 각광받게 돼 일류「호텔을」순회 공연하게 됐고 TV「커미디언」「시드·케자」에게「픽·업」되 1주일에 50「달러」씩 받는 전속「스크립터」가 됐다.
「브루크스」의 숨은 공으로「시든」의「코미디」는 50년대 TV의 최고 인기「프로」가 됐고 그의 주급은 50「달러」에서 2천5백「달러」까지 올라갔다.
갑자기 부자가 된「브루크스」는 방탕한 생활을 하게 돼 59년에는 아내와 헤어졌다. 60년 여우「앤·밴크로프트」양과 만나 3년 후에 결혼, 영화에도 눈을 뜨게 됐다.
65년 영화『제작자』(원명 The Producers)의 각본으로「아카데미」상까지 받게 되자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첫 작품『열두개의 의자』(「돔·드루이즈」주연)는 흥행에 참패했다.
두 번째로「워너·브러더즈」사의 요청으로 만든 작품이 엉터리 서부극『번쩍이는 말안장』이었다. 이 서부극으로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브루크스」는 계산을 못할 정도다. 다만 그는 번 돈을 마음껏 투자해서 다음 작품『젊은「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뉴스위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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