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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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유야 어디 있든 간에 국민투표에 관해 국민들은 그 자체보다도 국민투표이후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있던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 정치는 각박했고, 숨가빴다는 얘기가 된다.
국민투표가 끝난 지금 우리 정치는 그 내실에 있어서 한 단계를 획 하는 다짐을 해야겠다. 국민투표과정에서 참여와 거부의 입장은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 거리가 결코 좁아진 것은 아니지만, 강자나 약자 또는 권력을 가진 측이나 권력을 못 가진 측이나 간에 그 거리를 심각하게 한번 점검해 볼 계제가 됐다.
찬반과 거부-. 따지고 보면 그 행동의 방식과 표방에 완급의 차이는 있었을 망정 그 어느 것도 국가적 당위의 부정은 아니었다. 과격하고 자극적인 어구가 간혹 불꽃을 튕겼으나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하자는 데에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찬성표를 던진 사람가운데도 국민투표거부 논에 충분히 공감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며, 불참이나 반대표를 던진 사람가운데도 석연한 대안을 확신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전체유권자의 과반수인 찬성도, 그리고 40%가 넘는 기권과 반대도 그것을 놓고 반드시 산술적인 다수의견, 소수의견이라고 가를 수는 없다. 과 반의 다수의견이 현장에 전폭 만족하는 것은 아니며, 소수의견의 전부가 앞으로의 현실을 체념하고 현실을 전면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에게는 분명히 공통되는 갈구가 있다. 각박함을 씻는 훈훈한 바람을 기대하고 있다. 그 갈구를 몇 가지만 든다면 우선 강자의 관용이다.
정치는 도식이 아니며 법의 판단에도 폭이 있다. 다수와 소수는 선과 악이 아니다. 강자가 약자를 도외시하지 않고, 오히려 다수가 소수에게 관용을 보일 때 강자와 다수는 비로소 그 무게를 지닐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와 소수의 ??존을 그전제로 한다. 그 양자의 관계는 조화일수도 있고 혹은 격렬한 상극을 보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흔히 강자에게 억압충동이 생긴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러나 어떤 계제에는 탄력적인 수렴이 있어야 한다. 국민투표가 그 같은 계제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해서 잘못은 아닐 것이다.
강자의 관용은 결코 타협이 아니며, 오히려 그 관용은 강자와 약자, 다수와 소수자관계의 경직적인 대립을 풀어나갈 수 있다.
예컨대 긴급조치 위반으로 현재 구속되어 있는 인사들의 사면 등 조처가 취해질 수 있다면 정국의 해빙에 커다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개헌운동이다. 국민투표이전부터 있어온 개헌운동은 그 목적하는바가 국가의 기본을 뒤흔드는 것은 아니었다. 호헌론이나 개헌론이나 따지고 보면 견해의 차이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투표거부와 반대로 연장된 개헌론은 그것대로의 민주적 신념에 입각한 것이었으며, 민권신장을 위한 중요한 지표였음을 숨길 수 없다.
야당과 일부 재야세력은 국민투표에 불구하고 개헌운동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개헌운동이니 만큼, 개헌운동방식도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당연히 구호 적인 것보다도 논리적인 것, 정당 적 독주보다는 국민적 공감 위의 운동이어야 한다.
정치적 투쟁이 정치적 영역을 넘어 경제적·사회적 동요까지 초래할 경우에는 소 기하는 목표와 그 부작용의 경중이 전도될 수도 있다. 동남아 몇 나라의 예에서 그 같은 교훈을 볼 수 있다.
국민투표이후의 갈구가운데서 무엇보다도 앞서는 것은 서정의 근본적인 쇄신이다. 40%가 넘는 기권과 반대의 의미를 음미해 볼 때 뿌리깊은 부정부패와 사회적 부조리의 척결은 근본적인 과제다.
선거나 그 밖의 정치적 전기가 있을 때마다 기대되는 것이 부정부패의 일소였다. 부정부패가 국민의 동질 감과 사회적 유기성을 얼마나 해쳐 왔는지를 살펴보면 이 문제가 얼마나 절실한지 자명해진다.
오랜 과제인 부정부패 척결은 이제 경제적·행정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기본국정의 차원에서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국민적 바탕 위에 새로운 정치가 전개되기를 다시 한번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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