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장벽|동서독 분계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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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서독분계선 주변의 분위기는 땅굴사건이 터지고 있는 한국휴전선 일대의 상황과는 비교될 수 없을이만큼 평온하고 조용하다.
동독인이 서독으로 왕래하는 것은 약간의 제약을 받지만 서독사람들이 동독에 있는 가족·친척과 친지들을 방문하는 것은 거의 자유로우며 동서간의 우편왕래는 물론이고 전화통화도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사용되는 교환전화의 불편을 덜기 위해 앞으로 자동전화로 교체하는 계획에까지 합의를 보았다.
동독공산당 서기장인 「호네거」의 80이 넘은 아버지가 서독에 살면서 휴가기간을 동「베를린」의 아들집에서 보내고 돌아와 서독향리에서 살고 있다. 이상 몇 가지 이야기는 「분단현실」을 인정하며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불편을 주어진 여건에서 최대로 제어하고자 하는 독일민족의 부단한 노력의 면면들이다.
그렇다고 양독 관계에 일어나는 일이 모두 순순히 풀리는 것은 물론 아니다.
최근 동서독간에 경계를 이루고 있는 「엘베」강의 범람으로 동독 쪽 강변에 매설해 둔 「대인지뢰」들이 서쪽으로 둥둥 떠내려와 부근 임야와 농지의 여기 저기서 발견되어 「동서지뢰」찾기 작전을 벌여 야단이다.
동독으로서는 서독으로 탈주하려는 동독사람을 막으려는 평소 자기들의 살벌한 상황의 단면을 노출시켜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동독의 갖은 방지책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햇동안 서독으로 비합법적으로 넘어온 피난민수가 약5천명(합법적인 절차7천명)에 달하고 있다. 이중 대부분이 소위 「망명협조회」라는 탈주를 돕고 영업행위를 하는 비밀사조직에 매인 당 1천∼4천「마르크」(2백만∼8백만원)씩 지불하고 동구의 제3국을 경유하여 서독에 들어왔으며,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인 동서독의 철벽경계를 직접 뚫고 탈주에 성공한 사람수가 8백98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지뢰사건」이 터지자 곧 소집된 양독 경계위원회에서 동독 측은 앞으로 이런 사건이 재연 않도록 조처하고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확약했지만 자국민에 대한 불신이 계속되는 한 이 장벽이 더욱 강화될 것이 뻔하므로 앞으로 계속 이번 「지뢰사건」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어 경계선 부근에 살고있는 서독주민들의 분노가 이만저만한게 아니다.
이 「지뢰사건」으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서독측의 태도도 어느 때보다도 만만치 않다. 『동독 측에서 지뢰철거를 할 것이라는 보장은 물론 할 수도 없지만 달갑지 않게 굴러들어 오게 한 TNT의 장본인은 운송료정도 물어야할 것이 아니냐』는 한 서독관계 당국자의 말은 강경하지도 살벌하지도 않은 언어를 구사, 「유머」까지 섞어 가며 서독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부러움」이 없는 남북한관계에 시사해주는 점이 많다.

<서 베를린="엄효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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