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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미애의 줌마저씨 敎육 공感

'꿈과 끼'로 스트레스 주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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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미애
네이버 ‘국자인’ 카페 대표

몇 년 전부터 진로가 중요하다는 얘기가 사방에서 나오고 있다. 되도록 빨리 진로를 정한 뒤, 관련 체험을 쌓아야 대입에서 합격하고 결국은 인생에서도 성공한다는 얘기 말이다. 대입에서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면서 ‘진로=합격=성공’이란 일반화도 등장했다. 아이가 공부만 잘하면 그만 아니냐던 엄마들도 새로운 고민에 빠져 있다. 연우 엄마가 그렇다. 연우는 중학교 2학년이다. 인사성 밝은 기특한 아이다. 연우는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은 진로를 빨리 정하고 그 방향으로 관심 가지고 뭔가 하고 있는데 왜 나는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있을까. 이러다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다. 연우 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도와줘야 하느냐”고 답답해했다.

 수정이는 연우랑 다른 경우다. 수정이는 어려서부터 영어교사가 되고 싶어 했다. 중·고교 시절에도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 봉사활동 실적도 열심히 쌓았다. 그런데 대입 수시모집에 지원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영어교육학과와 사학과에 중복 합격한 것이다. 그런데 수정이는 사학과를 가겠다고 부모에게 이야기했다. “이 분야도 재미있을 것 같아. 교사라는 직업이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나랑 좀 안 맞을 거 같아.” 수시 발표 후 고3 마지막 겨울방학 동안 사학 관련 책을 읽기 시작하고 인문학 강좌를 찾아서 참석했다. 부모 입장에서 보자면 참으로 얼떨떨한 일이다. 6년을 영어교사가 되겠다고 꿈을 고집하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꿈을 휙 던져버리고 다른 꿈을 품었으니.

 우리는 지금 ‘꿈과 끼’라는 단어로 아이들을 너무 압박하고 있는 게 아닐까.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는 비영리 공익단체를 운영하는 이찬승 대표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그는 원래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한때 영어강사를 했으며, 영어교재 출판 등을 하는 능률교육이란 회사도 창업했다. 지금은 “교육으로 사회적 차이가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한다. 만일 이 대표의 삶이 하나의 진로로 일관돼 있었다면 우리 사회는 이런 공익단체를 만날 수 있었을까.

 아이들에게 다양한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하는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너의 꿈과 끼를 빨리 찾아야 한다”는 부담은 주지 말았으면 한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청년이 되어서도 진로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어른인 우리도 그렇게 살지 않았나.

이미애 네이버 ‘국자인’ 카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