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만난 오바마 … 중국 부글부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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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1일 오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망명정부 수반을 지낸 달라이 라마를 만났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를 만난 건 2년7개월 만이며, 2010년 2월과 2011년 7월에 이어 세 번째다. 문제는 “반(反)중국, 분열 활동을 하는 정치적 망명자”(중국 외교부)로 규정한 달라이 라마를 만난 데 대한 중국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다.

 오바마-달라이 라마의 회동 계획이 처음 알려진 20일 오후 중국 외교부는 화춘잉(華春瑩)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우리는 엄중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미국 측에 엄정한 교섭(항의)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화 대변인은 “시짱(西藏·티베트)은 중국의 내정에 속하는 문제로 어떤 국가도 간섭할 권한이 없다”며 “미국 측이 지도자(오바마 대통령)와 달라이 라마의 회견을 마련한 건 중국 내정에 대한 난폭한 간섭이며 국제관계의 준칙을 엄중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중·미 관계를 엄중하게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예정대로 회동을 강행했다. 케이틀린 헤이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회동 전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종교·문화 지도자라는 점에서 달라이 라마와 만날 것”이라고 만남의 성격을 규정했다. 헤이든 대변인은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며 우리는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다.

백악관 측은 회동 장소도 외국 정상과의 회담 장소로 이용하는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가 아니라 백악관 관저 1층의 맵룸(Map Room)이라고 밝혔다. 회동도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 비공개였다.

 하지만 중국의 반발을 무시한 채 만났다는 점에서 중국을 겨냥한 “의도된 실력행사”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중국이 신형 대국관계를 앞세워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영토 분쟁에 적극 나서고,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설정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정책을 견제한 데 대한 반격이라고 로이터통신 등은 전했다.

실제로 헤이든 대변인은 “미국은 중국 내 인권과 종교 자유를 강하게 지지한다”며 “중국 당국이 달라이 라마와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할 것”이라고 말해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를 건드렸다.

워싱턴·베이징=박승희·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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