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법령의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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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행 국민투표법은 9대 국회가 구성되기 직전인 73년2월16일 비상국무회의에서 제정되었고 이 법 시행령은 22일 임시국무회의에서 이번 국민투표안의 의결과 함께 갑자기 만들어졌다.
이같이 국민투표에 관한 법령이 국민의사가 집약되는 국회에서 제정되지 않았다 해서 야당에서는 이 법령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야당이 국민투표 자체를 거부하려는 표면적인 이유도 투표법 상의 문제점을 내세우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문젯점의 하나는, 찬반활동에 관한 것을 들고 있다. 투표법은 국민투표안이 공고된 때부터 투표전날까지 찬반활동을 거의 봉쇄하고 있다.
찬반운동이라 함은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는 사항(이번 경우 현행 헌법을 계속 수호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중요정책)에 관해 찬성하게 하거나 반대하게 하는 행위로 법은 규정했고 단순한 의견의 개진이나 의사표시는 운동이 아닌 것으로 예외를 두었을 뿐이다.
강연·인쇄물·방송·서명·호별방문·확성장치·거리행진 등으로 이런 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여(법28조) 사실상 정당이나 개인은 전혀 운동을 할 수 없다.
지난 세 차례의 헌법개정안에 대한 투표와 달리 이번에는 특히 중요정책에 관한 찬반 의사형식이기 때문에 찬반의 개념도 아직 불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법으로 찬·반 운동을 거의 규제한 것과는 달리 관리기관인 선관위에서는 ▲계도 ▲투표안 게시 ▲공보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야당에서는 찬성활동의 문은 열려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번「국민투표안」은 박대통령의 특별담화와 같은 것으로 현행헌법과 유신체제의 불가피성을 실명하는 내용이다.
투·개표 참관에 있어 정당인을 배제한 점도 야당이 제기한 문젯점이다.
투표법은「학식과 덕망」이 있는 당원이 아닌 사람을 참관인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정은 찬반활동의 봉쇄와 함께 정당이 국민투표의「아웃·사이더」로 밀려날 요소라 할 수 있다.
중앙선관위가 투·개표 참관인 선정에서 여야당의 추천을 받기로 한 것은 바로 이런 미비점을 보완하려는 취지라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선관위의 재빠른 이 조치는 신민당의 투표거부 이유를 둔화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 같다.
정당이 참관인을 추천한다 하더라도 당원이 아닌 자 중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야당이 바라는「참관」이 될지는 의문이다.
지난 9대 의원선거 때 적용한 선거법도 정당참관인을 배제해서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이 때문에 유진산 전 신민당총재가 73년 박대통령과 면담했을 때 이 문제를 제기해서 박대통령이 이를 보완할 용의를 표한 것으로 보도된 일도 있다.
그러나 야당은 국민투표를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지 그 동안 국회에서 비상각의 제정법의 개·폐를 추진할 때 이 문제를 전혀 제기하지 않았다.
야당은 투표용지의 찬·반 난에도 불만이다.
시행령이 규정한 투표용지에는 찬성 난에「나는 대통령의 중요정책을 찬성한다」는 문구와 ○표가 쳐 있고 반대 난에는「나는 대통령의 중요정책을 반대한다」와 ×표를 했다.
찬성자는 물론 찬성 난에, 반대자는 반대 난에 각각 붓 뚜껑을 찍어 ○표를 하도록 했으나 용지자체가 투표자에게 심리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낳게 한다.
용지의 문구에 국민투표안에서 제시한「헌법」에 관해 표현이 없는 것도 주목 할만 하다.
과거 국민투표가 있을 때마다 새 국민투표법을 적용했던 점도 법 시행과 관련된 두드러진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62년 투표는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제정한 법에 의했으며 69년의 3선 개헌안 때는 개헌안 변칙통과와 함께 개정한 법을 적용했는데 이때에는 정당의 찬반운동을 허용했었다.
72년의 유신 헌법안에 대해 당시 계엄령 하 실시 때에는 특례법을 적용했다.
야당이 현행 국민투표법의 문젯점을 지적하고 있으나 여당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이미 국민투표 사무가 이 법에 의해 집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남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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