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사정을 개선하는 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무역 규모가 1백억「달러」를 넘어선 지금 외환 문제가 제기하는 애로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이냐 하는 과제는 단기 정책의 최대 초점이 아닐 수 없다.
외신은 국내 외국환 은행들의 신용 상태를 염려하여 「뱅크·론」이나 「리파이넌스」를 제공치 않으려 하고 있으며, 때문에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채무자로서 「뱅크·론」2억「달러」를 도입키로 했다고 전한다. 또 국내 외국환 은행들은 수입 신용장 개설을 극력 억제하고 있어 외국환 업무가 한산한 상태라고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안팎의 사정 변화로 보아 외환 수급의 실상은 어려운 상태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겠는데, 이를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가에 대해서 정부는 물론 업계와 소비자들은 이제 깊은 성찰을 가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외환 문제는 국내 경제 문제와 달라서 국내적 수단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며, 그 때문에 항상 미리 장래를 내다보고 여유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 널리 인정되고 있는 견해라 하겠는데, 본 난도 74년 연초부터 이 점을 누누이 강조해 왔음을 상기시키고 싶다.
솔직이 말해서 지금의 외환 사정은 누적된 정책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이미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73년도의 국제 「인플레」와 그에 따른 국제적인 투기의 진행으로 수출 「붐」이 일어났을 때 무분별하게 시설을 확장한 것이 사태를 어렵게 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다.
74년 초부터 자원 투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 후유증을 생각지 않은 이른바 비축 금융에 착수함으로써 무모하게 수입을 촉진한 것이 사태를 어렵게 만든 둘째 이유이다. 또 국제 수지 적자가 계속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축 금융의 모순을 재고 금융으로 보완함으로써 환율 인상을 예상한 투기적 수입을 금융이 지원한 것이 사태를 어렵게 한 세번째 이유이다.
또 국제 수지 적자 확대를 예방적인 환율 인상으로 사전에 억제치 못하고 거꾸로 관리가 어려운 단기 부채의 대폭적인 도입으로 대처함으로써 부채 관리를 어렵게 만든 것이 문제를 확대시킨 또 하나의 원인이다.
그러나 기왕의 잘못을 탓한다고 현재의 사태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모두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합심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먼저 소비자들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앞으로의 사태는 악화될 수도 있고 개선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고 소비자들이 물자 부족을 예상해서 매점에 나선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므로 이 점을 소비자들은 스스로 자제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업계는 이 시점에서 진실로 국민경제의 장래를 걱정하는 고차원의 안목을 갖추어야 하겠음을 강조한다. 막대한 금융 지원을 받아 수입해 온 재고를 치부의 수단으로 차제에 이용하려 한다면 국민경제는 파국으로 몰려들 것을 업계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업계가 앞으로 특히 경계해야 할 두 가지 사항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외환 사정을 기화로 해서 가격 인상을 거듭한다면 소비자의 구매 심리를 자극하게 되어 외환 사정과 물가 정세를 더욱 악화시킬 것임을 업계는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또 업계는 재고를 보유한 기업이 보유치 못한 기업을 지원함으로써 보유 재고를 이용한 수출의 길을 사리 추구 때문에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끝으로 정부는 외환 위기에 대응해서 국내 정책을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검토해 주기를 바란다. 외환 문제가 어려워질수록 국내 정책은 초 긴축을 선택하는 것이 정석으로 되어 있으나 이 문제를 너무 소홀히 다루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외환 애로 때문에 업계의 가동률이 떨어지거나 휴폐업이 속출한다면 경기 회복책이 결과적으로 물가 부양책으로 변질되는 사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국내 경제 사정은 예상 이상으로 어려워질 공산이 짙은 것이며 그 여파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업계, 그리고 소비 대중이 사태 변화에 적응하고도 합목적적으로 대응하는 길밖에 없음을 거듭 강조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