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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등 300여명·3중 차단작전… 설악산 몸으로 지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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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가 무너지면 설악산은 죽는다-."

5일 오후 8시30분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남쪽으로 3㎞ 떨어진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저수지 남쪽 물갑리 일대.

서울.경기.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소방차 25대가 속속 모여 들었다. 1㎞ 남쪽 산등성이에서 시뻘건 불길이 설악산을 향해 맹렬히 타들어 왔다. 이날 낙산사를 삼킨 불길이 강한 바람을 타고 설악산 턱밑까지 번진 것이다. 저수지 건너편은 바로 설악산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다.

▶ 양양 산불이 휩쓸고 간 낙산사가 잿더미로 변했다. 원통보전을 비롯한 건물 14개 동이 순식간에 전소됐고 7층석탑과 대성문(左), 교육관(右), 사천왕문(上)만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해안가에 있는 의상대와 홍련암은 불길을 피했다(①-원통보전, ②-무설전, ③-범종루, ④-종무소, ⑤-심검당, ⑥-취숙헌, ⑦-요사채가 있던 자리).사진공동취재단

산불대책본부에는 비상이 걸리고 '설악산 사수작전'이 펼쳐졌다. 현장 지휘를 맡은 동해소방서 염찬수 서장은 방화선을 3중으로 세웠다.

오후 9시 소방관.공무원.군인 등 300여 명의 배치가 끝났다. 그러나 물 공급이 문제였다. 소방차 한 대 분의 물(3000~4000ℓ)이 바닥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분. 낙산도립공원 내 소화전에서 물을 채워오는 데는 한 시간이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이때 서울 영등포소방서 박종근(49) 반장이 저수지와 연결된 농수로를 발견했다. 박 반장은 저수지 건넛마을 이장에게 수문을 열어줄 것을 요청했다. 최전방 소방차 2대가 진공흡수기로 수로에서 끌어올린 물은 호스를 통해 맨 뒷차까지 전달됐다. '릴레이 방수'덕택에 소방관들은 밤새 쉬지 않고 물을 뿌릴 수 있었다.

오후 11시30분 불은 어느새 1차 방화선 500m 앞까지 덮쳤다. 30여 명 소방관의 물대포는 불이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산 아래쪽을 집중 겨냥했다.

6일 오전 5시40분, 밤새 필사적인 저지에도 불길은 최전방 소방관의 발밑에까지 번졌다. 전 소방대원이 사력을 다해 물을 뿜기 시작한 순간 먼동이 트는 쪽에서 헬기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폭탄이 불기둥을 잡자 진화대원들은 흩어진 잔불에 일제히 달려들었다.

"진화 완료-." 오전 8시30분 곳곳에서 박수가 터졌다. 저수지 건너편에서 마음을 졸이던 100여 명의 주민은 "우리도 살고 설악산도 살았다"며 안도했다.

한편 양양.고성 산불은 발생 사흘 만인 6일 대부분 꺼졌다. 강원도 산불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6시부터 진화용 헬기 38대와 민.관.군 1만8000여 명을 동원, 양양과 고성 지역에서 대대적인 진화작업에 나서 큰 불을 잡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6일 현재 양양 지역에서만 건물 246채가 전소되고 144가구 376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양양=정강현.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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