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유기춘 문교부장관·장이욱 서울대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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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선생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유기춘 문교부장관은 48년도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할 때 총장으로 있었던 백발의 스승 장이욱 박사 (81)를 27년만에 장관 집무실에서 맞았다.
▲유 장관=상경 (장관 취임) 후 진작 찾아 뵙고 인사도 드리고 가르침도 받을까했습니다만 이곳 일이 바빠서…. 죄송합니다.
▲장 박사=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학원 문제로 어려움이 많을 줄 압니다. 대학생들이 요즘은 다소 안정을 되찾는 느낌이 들긴 하던데….
▲유=몇개 대학에서는 법정 수업 일수를 못 채워 겨울 방학도 없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인사를 나누자 대화의 초점은 학원 문제에 맞춰졌다)
▲장=대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며 공부를 잘하지 않는 주요한 까닭을 어떻게 보세요.
▲유=제 생각으로는 학원 내에서는 학내 사태를 일으킬 큰 요소가 없다고 봅니다. 대개 학원 밖에서 여러 가지 바람이 불어 이 바람이 그대로 학원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밖으로 쏟아져 나가는 것으로 봅니다.
▲장=활동적인 일부 학생들이 일선에 나서 「데모」를 할 때 「사일런트·머조리티」 (말 없는 다수 학생)는 그저 활동적인 학생들과는 동조할 수 없어 가만있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어요. 이 사람 생각으로는 이들 학생 모두가 어떤 문제에 대한 견해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요.
▲유=어떤 특수한 「이슈」를 가진 학생들이 학원 안팎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 나머지 학생들 대다수가 이와 견해를 같이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당면 문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총장·학장·교수가 학생들과 한편에 서야한다고 봅니다. 이 말은 학생들과 같이 반체제 「데모」를 찬성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학생들과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무엇이 진리며 어떤 것이 정의인가」 결론을 같이 내리고 이해를 같이한다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교수와 학생간의 대화 중 교수 측은 학생들의 이론에서 옳은 것은 『그렇다. 너희들 말도 일리가 있다』고 말해주고 학생측은 『기성 세대 만큼은 현실을 잘 모른다』는 점을 시인하게 됨으로써 양측이 합치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학생들의 장점은 뜨거운 열의도 있지만 이성에 약하고 이론이 도도하면 그 이론에 따르는데 있다고 봅니다.
▲유=아주 훌륭한 말씀입니다. 학원 문제는 각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해결돼야 합니다. 부임이래 총·학장들이 권한과 책임을 갖고 학칙에 따라 학생들이 수업에 충실하도록 해왔지요.
교수와 학생간의 대화는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교수는 제자들에게 보다 친절히 해 줄 것을 총장 재직 시부터 강조해 왔습니다. 학생들은 국제간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서 사회에 배출돼야 할텐데 유수한 대학들이 연간 수백시간씩 휴업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장=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교수와 학생이 한편」에 서지 않는 한 아무리 공부하라고 해도 학생들은 선생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대화를 통해 합치점에 도달한 뒤에는 『현재는 다소 불만스럽더라도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로서 공부하자』는 선생의 말에 따를 것으로 봅니다. 이 말은 반정부적인 태도를 가져도 좋다는 뜻에서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시켜야 합니다. 폐교란 말이 나오곤 했는데 이것은 결코 당면 문제 해결책은 못 돼요.
▲유=면학 분위기는 대학인 스스로가 조성해야 할 줄 압니다만 기성 세대의 노력과 사회에서 대학을 아껴주는 기풍이 아쉽습니다.
▲장=장관께서 앞으로 기회 있을 적마다 수시로 각 대학 학생 대표들과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 볼 수는 없을까요. 현 시국의 어려운 점을 얘기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상호간에 일치점을 찾도록 노력한다면 학생들은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유=노력해보겠습니다. 동질적인 사회가 구성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리라 봅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농촌과 도시·지식인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의 동질적 접근을 위한 기초 작업이 한창 추진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대학가는 너무 성급해도 안됩니다.
▲장=요즘은 일기가 과히 차지 않아서 지금 공부해도 괜찮겠습니다.
▲유=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 같습니다 (웃음). 많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가끔 가르침을 받아야겠습니다. <기록=오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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