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정책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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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가에 대한 정책자세가 12·7조치를 고비로 하여 근본적으로 뒤바뀌었다. 행정력을 동원해서 물가를 단속하던 방식에 모순이 많고 실효성이 낮다는 자각이 정책당국자들로 하여금 자세변화를 일으키게 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환율과 미가, 그리고 공공요금만 억제하면 물가를 연율 3%상승선에서 억제할 수 있다던 정책이 강력히, 그러나 무리하게 추진된바 있고, 그 때문에 물가상승요인을 계속 누적시켜 왔었다.
그러한 누적적 요인들이 결국 저지할 수 없는 압력으로 작용해서 올해의 환율-물가현실화로 귀결된 것이다. 국제적인 자원투기가 급속히 진행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3%선을 고수해온 경직적 자세를 늦게나마 포기하고, 일전하여 시장기능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은 이제 와서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왕 자유화의 방향으로 정책을 바꾼 이상, 원칙적으로 말해서 물가 체계가 새로운 수준에서 안정될 때까지는 행정력의 개입을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시점에서 또다시 행정력이 어설프게 개입한다면 물가현실화의 뜻도 없거니와, 앞으로의 정책지침을 찾는데도 지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정책도 급속히 반전된다면 그만큼 혼란과 부작용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또한 깊이 고려해야한다.
행정력으로 억눌러오던 물가를 하루아침에 자유화하는 경우, 업계는 그동안 못 올리고 있던 것을 차제에 한꺼번에 올리려 할뿐만 아니라 덤까지 붙이려 할 것은 뻔한 이치다. 또 환율인상이 물가에 완전히 흡수되는 기간은 선진국의 경우, 6개월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가구조로 보아 환율상승율의 3분의1선에서 제품가격이 오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수입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환율의 물가반사율이 높다는 이유는 부당한 것이나, 재고소진기간이나 원가반영속도까지 무시해도 좋은 것이냐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그러한 시간적 지체효과가 한국에서만 존재하지 않겠느냐를 생각한다면 환율인상과 동시에 모든 가격을 조정해준 것은 결코 가격자유화나 현실화조치의 명분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요컨대 현실화나 자유화의 방향은 옳다하더라도 그 절차에 신중성을 잃은 것이 아닌가를 장래를 위해 철저하게 검토해 봄직하다는 것이다.
한편, 경제정책협의회에서 제기된 물상정책의 방향론은 물가 3%억제론를 정확히 반전시킨 시안이라는 점에서 3%억제론과 동일한 모순과 경직성을 파생시킬 염려가 있다. 환율과 미가, 그리고 공공요금만 눌러두면 물가를 3%선에서 억제할 수 있다는 단순사고와 그것이 물가안정에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다는 사고는 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물가는 전체경제동향의 종합적 결과이기 때문에 다원적인 원인의 소산이지 특정요인만의 지배적 소산일 수는 없다.
또 물가변동의 지배적인 원인은 시간의 변천에 따라서 바뀔 뿐만 아니라 정책대응방식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이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특정요인만이 물가상승에 기여한다, 또는 기여치 않는다는 단언적인 평가는 회피해야 마땅하다.
더우기 우리의 정책관행은 사태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키보다는 선입관이나 결함있는 신념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컸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순전히 이론적인 단순화작업으로 도출된 결론을 행정지침으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문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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