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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외대생 참변 체육관엔 햄릿 꿈꾸던 배우도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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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고 최정운씨의 부인 레티끼에오안이 부산시 좋은강안병원 빈소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사는 게 말이 아냐. 너무 힘들다. 이제 연극을 포기해야 하나 봐.”

 두 달 전, 최정운(44)씨는 경성대 연극영화과 동기인 친구에게 고충을 토로했다. 동문 모친상에 참석해 달라는 친구의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최씨는 이번 부산외대 오리엔테이션 사고의 희생자 중 한 명이다. 언론에서는 그를 ‘이벤트업체 직원’으로 보도했지만 사실 최씨는 ‘뼛속까지’ 연극인이다. 경성대 재학 시절 그는 연극영화과의 ‘에이스’였다. ‘햄릿’ ‘하녀들’ 등 교내 공연 때마다 주연을 꿰찼다.

 대학 졸업 후에도 최씨는 고향인 대구에서 공연을 계속했다. 많은 연극인이 그렇듯이 그는 가난을 훈장처럼 여겼다. 2012년, 최씨는 베트남에서 사고로 숨진 친형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다. 그는 한 달 가까이 통역을 해준 한국어 전공 현지 아가씨와 사랑이 싹 터 신혼 살림을 꾸렸다. 그가 가난에 대한 압박감을 느낀 것도 이 무렵부터다. ‘입’은 늘었지만 수입은 그대로인 현실은 그를 괴롭게 했다. 가정과 극단을 모두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이벤트업체 문을 두드렸다. 바로 그 이벤트업체 아르바이트가 화근이었다. 그는 대구의 한 지인에게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 일을 부탁받았다. 행사 모습을 촬영해 편집해 주는 일이었다. 일당은 10만원. 한 푼이 아쉬운 최씨에겐 큰돈이였다. 2월 17일, 그는 10만원과 자신의 목숨을 맞바꿨다. 학생들의 모습을 한창 촬영하고 있는데 체육관 지붕이 최씨를 덮쳤다.

 사회의 관심은 숨진 대학생들에게 쏠렸다. 숨진 지 이틀이 지난 19일 그의 빈소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베트남 친정에 가 있던 그의 아내는 뒤늦게 사고 소식을 듣고 이날 오후 늦게 빈소에 도착했다. 보상 문제도 아직 풀리지 않았다. 코오롱 측은 “먼저 대학생들에 대한 보상협상이 끝난 이후 보상하겠다”며 직원 서너 명이 빈소를 들른 게 전부다. 이벤트업체 측은 아예 연락도 없다. 부인 레티끼에오안(26)은 “사고 당일 저녁, 일하고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게 마지막 인사였다”며 “남편의 죽음에 세상이 무관심한 것 같다”고 울먹였다.

 “죽는 것은 그저 잠자는 것일 뿐이다.”

 햄릿의 대사처럼, 연극을 무엇보다 사랑했던 그는 그렇게 잠들었다. 대학 동기 김영일(43)씨는 “죽어서까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부산=고석승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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