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74년의 한국영화계는 『영화의 질은 계속 떨어지고 관객은 외면해도 영화제작자는 살찌고 있다』는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영화제작자가 어떤 범작의 영화를 만들어내도 그 영화에는 3분의 1의 외화수입권이 주어지므로 설혹 관객에 의한 수입이 전혀 없어도 계산상으로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이 같은 한국영화계의 부조리는 73년2월 영화법이 개정되면서 싹트기 시작했지만 74년 한해는 이러한 약점이 영화 제작자들에 의해 최대한 이용된 해였다. 개정영화법과 그에 바탕을 둔 영화당국의 시책이 국산영화 3편 제작에 1편의 외화「코터」를, 1년을 4분기로 나누어 매 분기에 우수영화 3편을 선정하여 역시 1편씩의 외화「코터」를 주도록 한 것은 국산영화발전을 위한다는 근본취지를 벗어나 오히려 국산영화를 위축되게 한 요소로 등장한 것이다.
연초 개봉된 최인호 원작의 『별들의 고향』(이장호 감독)이 관객 50만을 육박하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면서 영화제작업계는 의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70년대에 접어들면서 거의 소생할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영화계에서 이 같은 국산영화의 성공은 그 저변의 이유야 어쨌든 상당한 자극제가 됐음에 틀림없다. 『별들의 고향』이 성공한 것은 원작이 공전의 「베스트셀러」였다는 점, 신예 이장호 감독이 그 나름의 참신한 「터치」를 구사한 점 등이 요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여기에 곁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안인숙양이 보여준 연기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TV에서 닦은 연기력을 바탕으로 안양이 이 영화에서 보인 호연은 시대감각에 알맞은 내면적 연기로서 70년대 영화연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별들의 고향』의 대성공은 문학작품의 영화화 「붐」만을 유발시켰을 뿐 수준이나 흥행면에서 같은 정도의 영화로 이어지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것은 제작자들이 『별들의 고향』의 성공을 우연한 것으로만 보고 많이 읽힌 문학작품의 영화화는 최소한의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안이한 제작태도를 보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별들의 고향』의 영향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역시 문학작품을 영화화한 박경리 원작의 『토지』(김수용 감독)가 거둔 성과는 74년 영화계의 커다란 수확으로 꼽을 수 있다. 대하소설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완전히 해소한 것은 아니지만 김수용 감독이 오랜만에 보인 짜임새 있는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김지미양이 과시한 돋보이는 완숙한 연기가 조화를 이루어 비록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영화제는 아니지만 「파나마」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의상상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밖에 윤정희양이 「파리」유학 도중 귀국하여 『황홀』『야행』 등 몇몇 작품에 출연, 각광을 받았으나 연기 면에서 그의 「이미지」를 새롭게 부각시키는 데는 실패했으며 윤소라양이 『특별수사본부』「시리즈」에서, 이효춘양이 『이중섭』에서 각각 짜임새 있는 연기를 보여 앞으로의 성장가능성을 비친데 그쳤다.
74년은 특히 신인 배우들이 무더기로 양산된 한해였다. 이처럼 많은 신인들이 쏟아져 나온 이면에는 제작자들이 신인을 기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가령 저렴한 「개런티」, 순조로운 촬영「스케줄」, 그 자체로서의 명분-이 작용된 것으로서 바람직한 현상은 못되지만 『호기심』의 방희, 『진아의 편지』의 이숙명, 『파계』의 임예진 등은 74년에 「데뷔」한 신인을 대표할 수 있는 얼굴들이다.
74년도의 영화계가 표면적으로는 풍성한 양상을 띠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로 어떤 특성을 추출해낼 수 없는 까닭은 영화 그 자체에 영화 외적인 것이 심하게 작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국산영화 3편 제작에 1편의 외화수입권을 주도록 한 것은 커다란 문제점을 나타내 7편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견해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또한 우수영화의 심사과정도 그것이 비전문가인 관계당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검토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더욱이 개정영화법으로 발족한 영화진흥공사와 영화배급협회가 지난 한해동안 한국영화발전을 위해 어떠한 실적을 남겼는가 하는 것도 신년 영화계가 당면한 하나의 문제점으로 「클로스업」되고 있는 것이다. <정규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