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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 가사 판치는 대중 가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국적을 잃어버린 한국 가요』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크게 유행해 온「팝」적인 요소를 가미한 대중가요「붐」은 아직도 청소년층을 여전히 휩쓸고 있다. 최근의 한 조사에 의하면 현재 우리 나라 총 방송 시간의 50%를 상회하는 대중오락「프로」의 대부분이 이런 유의 가요로 채워지고 있어 하나의 문제점으로 나타났다.
「남녀간의 사랑」을 가사 내용으로 한 이들 대중가요의 대부분은 「사랑」그 자체를 부정적·도피적·허무적인 것으로 내세워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한 마취제가 돼 젊은이들의 의식 구조를 좀 먹고 있을 뿐 아니라 비인간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최근 아동 문학가 박화목씨가 조사한 현 인기 남녀 가수들의 「히트」가요 1백78곡의 가사 내용 분석에서도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삼은 곡이 1백8편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특기할 현상으로 지적됐다. 분석 결과는 ①퇴폐·불신조장=23곡 ②도피(옛사랑·옛추억·옛고향)=25곡 ③사랑의 허무·방황하는 자아=28곡 ④쾌락추구=20곡 ⑤비정·이별=51곡 ⑥자연에의 동경=9곡 ⑦삶의 추구=22곡으로 나타났다.
부정적인 사랑의 가사는 「사랑 주고 슬픔 주고」 「떠나간 님」 「야속한 님」 「사랑은 눈물의 씨앗」 등의 개념어로 나타나고 있으며, 도피적인 사랑은 「사랑의 시절이 그리워지네/꽃반지 끼고…/그때는 좋았지」 따위의 가사로 표현되고 있다. 이 밖에 허무 의식으로 사랑을 노래한 것도 여러 곡이 있다.
이같이 남녀간의 사랑을 긍정적인 측면에서만 보지 못하는 이유로는 인생을 방랑의 나그네로 보는 소박한 서민 철학과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적인 상황을 볼 수도 있겠지만 일부 방송 종사자의 취향과 기호에 따른 「매스·미디어」의 편파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씨는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한국 대중가요의 문제성을 「생의 의욕이 없고 환상적·현실 도피적이며 이상적인 젊은이 상이 전혀 부상돼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TV와「라디오」의 건전 가요 「프로」 확충을 촉구했다.
이러한 대중가요의 청취에 습관화된 젊은이 등이 자극적인 것을 찾아 TV 허상에다 도피를 일삼으며 사회문제 등에 대한 「엘리트」와 대중간의 연대 의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다.
「매스·미디어」의 심미감각 상실로 인한 대중의 취미 타락은 특히 젊은이들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을 망각시킬 우려가 있다.
『가요가 단순한 오락일 뿐이라 하더라도 비 음악이어서는 안되며, 음악성 추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은 젊은이들이 이런 음악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최경식)·『한국가요 「세미나」=74년10월31일)라는 등의 제언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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