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은 없지만 긴박감 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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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일 상오 신민당 농성 돌입에 앞서 정일권 국회의장이 소집한 여야 총무회담은 30분간의 일방적인 기다림만으로 끝났다.
이날 공화당과 유정회는 여야 의원간에 있을지도 모를 충돌을 피하기 위해 소속의원들이 국회에 나오지 말도록 상임위원장들을 통해 지시했으며 유정회는 상오 9시로 예정됐던 수운회관에서의 의원 총회를 취소.

<구두 요청, 구두 거절>
본회의장 사용은 관례에 따라 의장의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으니 허가 신청은 문서가 아니라도 구두나 전화로 가능한 것.
신민당은 4일 하오 황낙주 부총무를 통해 정 의장에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하겠다』고 통고. 5일 상오 황 부총무는 농성 돌입 직전 김종하 의장 비서실장을 찾아가 『비록 농성이 목적이지만 문짝이라도 부서지면 국가재산의 손실이 되니 본회의장 문을 열어 줄 것을 의장에게 전해 달라』고 요구.
김 비서실장이 『사용 목적이 농성이라면 열어 줄 수 없다는 방침』이라고 잘라 말하자 황 부총무는 『그러면 정식 거부로 보겠다』면서 되돌아갔다.
의원들이 농성을 하는 동안 지휘와 지원을 맡은 신민당 총무단은 농성에 앞서 4일 본회의장의 난방 교섭, 의원들의 식사, 음료 준비로 부산.
김형일 총무는 농성에 앞서 의원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 입원 중인 이상신 의원은 농성에 불참토록 하고 정일형·김현기·한건수·채문식 의원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의원들에게는 철야는 하지 않도록 권고.
총무단에서는 의원들을 농성에 모두 참여토록 하기 위해 4일 전보와 전화로 의원들에게 5일 상오 9시 30분까지 국회에 나오도록 통지했으며 최형우·김동영·문부식·황명수·이진연 의원 등에게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상오 8시반까지 나오도록 조치.
황낙주 부총무는 사무처에 본회의장 문을 열어 줄 것과 연방을 해줄 것을 교섭.
정 의장은 4일 상오 선우종원 사무총장·이호진 사무차장·길기상 의사국장 등과 이 문제를 협의한 결과 농성을 위해 문을 열어 줄 수는 없으나 힘으로 들어가면 어쩔 수 없으며 의원들의 건강을 위해 난방을 안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

<식사도 본회의장서>
신민당 총무단은 국회법상 원칙적으로 회의 자료외에는 본회의장에 들여갈 수 없다는 뜻을 존중해 밖에 침구는 어쩔 수 없으나 식사는 국회 휴게실에서 하기로 했다가 방침을 바꾸어 이날 점심 식사는 본회의장 안에서 그냥 들었다.
음식점 사환이 설렁탕 그릇들을 들고 본회의장으로 들어서자 지켜서 있던 경위들이 한때 이를 저지, 황낙주 부총무 등이 달려나와 옥신각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영수 의원은 농성 기간 중 단식하겠다고 밝혔으며 양해준 의원도 이달 점심 식사를 들지 않았다.
농성 비용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식사는 1인당 매끼에 3백원 내지 5백원으로 하고 차는 총무실에서 끓여 공급키로 했다.
우선 짜놓은 48시간의 「메뉴」는 5일 점심 설렁탕, 저녁 밥 따로 한 곰탕, 6일 아침 설렁탕, 점심 도시락, 저녁 밥 따로 한 갈비탕, 7일 아침 설렁탕 등.

<김 총재 짤막한 연설>
『오늘의 우리 행동에 국민들은 많은 성원과 지지를 보내 줄 것이다』-.
김영삼 총재의 짤막한 연설에 이어 신민당 의원들은 김형일 총무로부터 『본회의장 문을 열어 주지 않으니 밀고 들어가자. 내가 앞장을 서겠다』는 말을 듣고 10시가 조금 지나 의사당3층 위원 총회실에서 1층 본회의장으로 내려갔다.

<몸으로 밀어 문 열어>
본회의장의 굳게 잠긴 정문에서 김 총무를 비롯, 최형우 황낙주 문부식 박병효 의원 등은 힘을 합쳐 문을 밀기 시작, 몇 차례 「영치기영차」를 한 후 문을 여는데 성공.
문이 열리자 기다리고 섰던 많은 의원들은 밀리듯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섰으나 전등이 꺼져 있어 본회의장 안은 어둡기만 했다.
의원들은 저마다 『불을 켜라』 「스팀」을 넣어라』고 외쳤으나 약 10분간 본회의장은 그대로 깜깜한 상태.
의원들은 「라이타」또는 성냥불을 켜기도 했는데 그러자 길기상 의사국장이 나타나 『성냥불을 켜지 마시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상오 10시15분쯤 전등불이 켜지고 「스팀」이 들어왔다. 이때 경위들이 본회의장에 들어와 기자들을 밀어내려 했다. 김 총무는 경위들에게 나가라면서 『2층 기자석을 개방하지 않으면 기자들을 나가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길 의사 국장이 거듭 본회의장 안에는 의원 외에는 들어올 수 없다고 하자 이택돈 대변인은 『회의가 진행 중이라야 본회의장이지 회의하지 않을 땐 이곳도 창고와 마찬가지』라고 큰소리로 외치면서 『「하우스」(집)와 「홈」(가정)의 차이도 모르느냐. 왜 자꾸 신경을 건드리느냐』고 호통.
의원들의 호통에 밀려 나간 경위들은 본회의장 문 밖에서 들어오려는 기자·비서 등을 제지, 옥신 각신을 벌었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밖으로 나간 이 대변인은 『정말 주먹 다짐 하기냐, 여기가 힘 자랑하는 곳이냐』고 일침, 이 같은 의원들의 요구로 2층 기자석은 마침내 개방했다.
의원들은 김형일 총무가 떨어져 앉아 있지 말고 모두 앞좌석으로 나와 같이 앉자고 했으나 김상진 의원 등이 「여당 의석에 기분 나빠 못 앉겠다』는 말에 그냥 자기 자리에 앉았다.
의원들의 소감을 들어보면.
▲이중재=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가지 못하고 이렇게 되니 여러 가지 의미에서 착잡한 심정이다.
▲박한상=야당이 농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다수의 횡포가 한심하다.
▲이진연=야당이 국민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농성도 전략상 필요하다.
▲김명윤=여당측이 위계 운운하는 모양인데 ××놈들이군.
▲김윤덕=국민학교 6학년인 딸애가 농성이 뭐야, 왜 하느냐고 묻길래 농성이란 자기 주장의 관철을 위해 앉아서 버티는 것이라고 말하고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몰라도 된다고 했다.

<병구 이끌고 참석>
이날 의원들은 대부분 두터운 「오버」에다가 내의를 껴입고 나왔고 김명윤·한영수 의원 등은 한복 차림.
입원 중이던 이상신 의원은 『아무리 아픈 몸이지만 좌시할 수 없어」나왔다』고 했다.
역시 와병 중인 정일형 의원도 비서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고 상오 11시30분 결혼 주례를 서기로 한 김재광 의원 같은 이는 전화로 주례 약속을 취소하고 나왔다는 얘기.

<담배도 피우기로>
의원들은 농성 중에 주로 독서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평소 본회의장에선 담배를 못 피우게 돼 있지만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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