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요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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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못 참을 두통이 며칠을 두고 떠나지 않았다. 과로와 저혈압의 탓으로 머릿속이 어떻게 되는가 싶었다. 토요일 밤엔 어줍잖은 강연인가를 하면서 전신의 붕괴 같은 무력감에 야릇한 절망을 곱씹기도 했다.
진단도 없이 주야 몇 날을 몸져누워서 줄곧 음악을 들었다. 육체의 치료에 음악이 효험을 준 일을 나는 경험했었기도 하다. 냉장고에서 꺼낸 반빙과의 귤을 베꺼 한 알씩 천천히 맛보았다. 눈물이 나도록 신선하고 청취한 음미를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다.
감정이 육체를 선도하며 음악은 또 감정에서 유용한 활력을 채워 준다고 믿어 왔으나 지금은 그러한 상환 의식과도 떠나 음악 그 자체의 도취에 깊숙이 빠져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곡들, 또한 아직 철 이른 「크리스머스·캐럴」에 정신없이 매료된다. 피로해지면 FM방송에 맡겨 버리고 또 다시 만족한다. 한공과 겨울 국화와 제주 귤의 풍미를 곁들인 음악의 유려….
비과학적 혹은 무지의 소치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내 육체를 의사와 의논하는 일이 별 반 없다. 내게 병증이 생기면 처음 얼마간은 견디고 그게 어려운 즈음엔 별 수 없이 쉰다. 우리 시대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내 몸도 쉴새 없이 사역 당하기 때문에 마음엔 쉬어 보는 일이란 여간 황송한 사치가 아니다. 고맙고 달갑기가 이를 데 없다. 이런 때 음악은 느린 물 여울을 흘러오는 황혼의 범선처럼 온갖 채광을 한꺼번에 담아 꿈속처럼 번득인다. 음악을 듣는다.
육체의 아픔과 해이마저 귀에 집중되어 전신으로 음악을 듣는다. 건조하고 각박해 있던 감정이 수증기처럼 따습고 온화하게 풀어진다.
공연히 바빴던 일의 부끄러움, 그렇다. 진실로 쓰거운 참회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제 힘에 겹도록 일을 맡아 분수없이 바삐 나도는 일은 일종의 타락이리라. 맹목의 과욕일 수도 있을뿐더러 치렀다는 일들을 되돌아보면 정말이지 하나도 제대로 되어 있지가 못하다
하면 터무니도 없이 들떴던 우매를 바로잡는 효력도 겸해·음악은 사람의 정서를 안정시키며 더하여 냉쾌한 유열을 실어다 준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새롭고 귀중한 잉태를 촉매해 준다. 심신이 조율되고 정신안의 한 회임이 점차로 그 중량을 늘린다.
젊었던 날 나는 사람의 손에서만 먹으려 했기에 약속처럼 심각한 굶주림에 떠밀리곤 했었다.
지금도 내 주식은 사람에게서 취하나 다만 달라진 건 특징의 한사람에게만 구하는 절후를 지내 와서 이 시대의 민중 헤일 수 없는 「너」와 「그」로부터의 시혜를 축적한다.
병력조차 나 자신과 너무나 흡사한 「그녀」들이 들끊는 전류처럼 내 몸에 체온을 흘려 보내 준다. 음악과 시와 모든 예술들이 영원히 젊고 풍요한 자연 만상이 이에 더하여 고귀한 피를 끊임없이 수혈해 주는 것이다.
하긴 사람도 삼라의 거대한 호흡기 안에 있으며 천지간에 이어진 유기 물체의 살아 있는 한 혈구임을 새삼 말할 나위조차 없으리라. 아뭏튼 내 두통도 또 한번 치유를 얻은 것 같다. 【김남조(숙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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