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서 헬기 불시착 … 내 인생 가장 긴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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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공사를 총지휘한 현대건설 곽임구 현장소장은 “본 공사보다 화물과 장비를 배에서 현장으로 옮기는 게 더 힘들었다”고 했다. 사진은 곽 소장이 고글을 쓰고 작업하는 모습. [사진 현대건설]

“준공식을 했으면 마음이 놓여야 하는데 그럴 수 없습니다. 아직 일부 마무리 공사가 남아 있습니다. 완전히 끝내고 떠날 때까지는 긴장의 연속이죠.”

 지구 둘레의 3분의 1인 1만3000㎞ 넘어 휴대용 위성통신장비를 통해 반 박자 늦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예상과 달리 굳어 있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준공식을 한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의 건설을 총지휘한 현대건설 곽임구(49) 소장. 공사를 시작한 2010년 12월부터 현장소장을 맡고 있다. 장보고기지는 현대건설 등 국내 건설업체 4곳이 30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해 지었다. 2만2000㎡ 부지에 건물 16개 동으로 이뤄졌다.

작업모를 쓴 곽 소장. [사진 현대건설]

 곽 소장은 “이번 공사는 1988년 완공된 제1기지 세종기지와 공사 난이도에서 크게 차이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따뜻해 바다가 얼지 않는 세종기지 현장과 달리 장보고기지가 들어선 남극 로스해 테라노바 베이는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이 때문에 쇄빙선으로 얼음을 깨면서 화물을 운송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한창 공사시즌인 여름철(12~2월) 얼음이 얇아지기 전에 짐을 옮기기 위해 해안에서 1.2㎞ 떨어진 화물선에서 얼음 위로 오가며 열흘가량 24시간 2교대로 일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덜 추울 때 공사를 해야 해 실제 공사기간은 12~3월까지 100일 정도다. 이 기간은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이기도 하다. 직원들은 공사기간이 짧아 2주에 하루 정도 쉬며 강행군을 했다. 가장 큰 애로는 바람이었다. 사람이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인 초속 25m의 칼바람이 거셌다. 바람 피해를 막기 위해 건물은 초속 65m의 바람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큰 위험을 겪기도 했다. 지난해 1월 현장답사를 한 뒤 귀국하기 위해 380㎞ 떨어진 미국기지로 타고 가던 헬기가 기상악화로 해안가 절벽에 불시착했다. 위치를 알 수 없었고 통신도 끊겼다. 곽 소장은 “몇 시간 뒤 헬기가 수리될 때까지 절망적이었다. 가족 얼굴이 떠올랐다”며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곽 소장은 25년 건설 경력의 절반가량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베트남 등 해외에서 일했다. “건설회사 근무기간 동안 처음으로 자원해서 온 현장인데 다시는 오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극한지에서 어렵게 지은 장보고기지가 우리나라 과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면 보람이죠.” 곽 소장은 직원들과 함께 다음 달 10일 철수해 귀국할 예정이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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