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J Report] 백화점, 디저트 업어주고 싶겠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지하1층 롤케이크 전문점 ‘몽슈슈’ 앞에 고객들이 긴 줄을 서 있다. 몽슈슈 매장의 긴 줄은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디저트가 고객들을 모으는 백화점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불황일 때는 화장품 중 립스틱이 잘 팔린다. 적은 비용으로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황기에 어떤 제품이 잘 팔리는 현상을 ‘립스틱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백화점에서는 디저트가 꽉 닫힌 고객들의 지갑을 여는 효녀 노릇을 하고 있다. 경기 침체 시기에 걸맞지 않게 가격은 일반 케이크의 두 배, 게다가 오랫동안 비좁은 곳에서 줄을 서야 하는 불편함에도 남녀노소 고객이 몰린다. 백화점 식품관의 구색 맞추기용 상품이었던 디저트가 고객을 모으는 대표 상품이 된 것이다.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명품관 지하 1층의 ‘치즈케이크팩토리’ 팝업스토어(단기 임시매장) 앞에는 구불구불 두세 겹씩 줄을 섰다. 한 조각에 8800원 하는 미국산 치즈케이크를 사려는 손님들이다. 두세 명이 서 있기도 비좁을 만큼 작은 공간에서 하루 1000만원 넘는 매출이 나온다.

 이런 인기 덕에 ‘일회성 반짝 매장’인 보통 팝업스토어와 달리 지난해 11월부터 세 번이나 매장을 열었다. 다음 달부터는 아예 정식으로 입점한다.

왼쪽부터 롯데 소프트리 허니칩스 콘, 현대 오테라 마카롱, 신세계 빌리엔젤 레드벨벳 케이크, 갤러리아 타르틴 피칸파이.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지하 1층의 롤케이크 전문점 ‘몽슈슈’ 매장 앞. 오후 2시 상품이 모두 매진될 때까지 긴 줄이 끊기질 않는다. 이 매장의 월 평균 매출액은 3억5000만원이다. 다른 브랜드가 있을 때보다 매출이 8.5배로 늘었다.

 신세계백화점은 17일 “지난해 처음으로 디저트 매출이 조리식품을 앞질렀다”고 밝혔다. 식사거리보다도 후식이 더 많이 팔린 것이다. 2008년 400억원이었던 이 백화점의 디저트 매출은 지난해 900억원으로 2배가 넘었다. 5년 연속 두 자릿수 매출 성장률을 거듭한 결과다. 갤러리아백화점의 디저트 부문 매출 성장률도 20%로 식품관 전체에서 가장 높다. 현대백화점도 풍년제과·토로링·마리벨뉴욕 등 각 점포의 새 디저트 브랜드 매출이 기존 매장보다 27~340% 늘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최근의 ‘디저트 효과’가 디저트를 밥 대신 먹는 젊은 여성이 늘고, 밥 먹고 후식을 꼭 챙겨 먹는 문화가 정착됐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불황의 영향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단것’을 찾는 영향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형마트에서 불경기에 매운맛 라면의 판매가 급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박보영(27) 갤러리아 델리 바이어는 “건강을 중시하는 추세와 달리 최근 디저트는 오히려 아주 달거나 고칼로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2배 이상 비싼 고가 디저트가 인기 있는 것도 ‘불황의 역설’로 설명한다. 아무리 비싼 디저트라고 해도 의류·가방 등과 달리 1만~2만원 수준이기 때문에 누구나 평소 못 누리는 ‘작은 사치’를 부리며 기분을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화점들이 100가지가 넘는 다양한 디저트를 경쟁적으로 들여오는 이유는 단순히 잘 팔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거 먹어봤어?”라는 말에 백화점을 찾아오게 만드는 ‘디저트 효과’를 노리는 측면도 크다. 백화점 디저트는 대부분 매장에서 먹지 않고 집에 포장해 가기 때문에 부담 없이 찾아가 줄을 서고, 길게 줄을 선 모습은 입소문으로 다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디저트가 ‘매출 효자’이자 ‘미끼 상품’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면서 인기 브랜드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해외의 브랜드 본사를 직접 찾아가 설득하고, 6개월~1년씩 공을 들이는 일도 적지 않다. 롯데백화점 주원 책임상품기획자는 “서울 이촌동의 유명 팥빙수집 ‘동빙고’를 소공동 롯데 영플라자에 들여오기 위해 1년 넘게 설득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조창희 바이어는 “홋카이도산 생크림을 수입하는 문제 때문에 한국 진출을 망설이는 일본 브랜드 ‘몽슈슈’를 설득하기 위해 직접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을 다니며 수입 통관 문제를 알아봤다”고 했다. 이름난 디저트 맛집은 대부분이 주인이 소규모로 직접 만드는 곳이라는 점도 백화점의 고민거리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품질유지가 어렵다”며 주인이 입점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갤러리아 박보영 매니저는 “이미 여러 번 거절당한 곳에도 틈나는 대로 찾아가 인사를 드린다”며 “그래야 혹시라도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을 때 우리를 선택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디저트 코너 영입 1순위는 가로수길·홍대·서래마을 등의 유명 가게다. 지난해 여름 소프트 아이스크림 선풍을 일으켰던 가로수길의 ‘소프트리’는 소공동 롯데 본점과 신세계 강남점에 들어왔다. 미국 가정식 파이로 유명한 이태원의 ‘타르틴’도 갤러리아 명품관과 신세계 강남점에 문을 열었다. 홍대의 빙수가게 ‘빙빙빙’, 서래마을의 추로스 가게 ‘츄로101’ 등은 팝업스토어로 큰 인기를 모았다. 최근에는 지방 맛집도 가세했다. 1951년 개점해 3대째 이어오는 전주의 ‘풍년제과’는 현대백화점 본점·무역센터·목동점의 디저트 매출을 이끌고 있다.

 요즘 영입 경쟁이 가장 뜨거운 것은 치즈케이크팩토리 같은 해외 브랜드다.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주면서도 해외여행이나 외국 영화·드라마 등을 통해 이 브랜드를 이미 알고 있는 고정 팬이 적지 않아 성공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박 매니저는 “부산에 사는 분이 ‘미국에서 먹었던 치즈케이크팩토리의 케이크가 맞느냐’며 ‘비용은 얼마든지 부담할 테니 부산까지 택배로 보내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하더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녹차·쑥·대추 마카롱 등을 인터넷에서 판매해 유명해진 ‘오테라 마카롱’이 첫 오프라인 매장을 현대백화점 중동점에 여는 등 온라인 브랜드 영입도 눈에 띈다. 또 서울뿐 아니라 수원·대전 등 지방 백화점에도 유명 디저트 브랜드가 차례로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디저트 유행’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너무 빨리 바뀐다는 것이 백화점의 고민이다. 신세계백화점 박수범 식음팀장은 “젊은 층이 식품을 유행 패션처럼 인식하면서 디저트 브랜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장 앞에 길게 줄 선 사진, “드디어 샀다!”는 글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입소문’을 타고 빨리 인기를 모으지만, 새로운 디저트가 나타나면 다시 그쪽으로 금세 관심이 쏠린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1~2년 단위로 계약하는 식품 매장과 달리 디저트 매장의 계약 단위는 3~6개월로 짧게 운영되는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구희령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