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오늘은 왠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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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가만히 오지 않는다. 봄은 소란스럽게 온다. 얼음장이 갈라지는 소리, 그 밑으로 물이 흐르는 소리, 그리고 연둣빛 싹이 움트고 꽃망울이 맺히는 소리…. 그렇다. 봄은 전쟁과 같이 온다. 천지간에 봄은 점령군처럼 밀려오는 것이다." 화가 김병종 선생의 글 중 일부다.

마치 예언처럼 이라크전쟁이 터졌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세계 열강들은 지난 겨울 동안 무척이나 분주했다. 미국과 이라크가 유엔을 둘러싸고 벌인 '줄다리기'가 '웬지' 두렵기만 하더니 봄은 기어코 혼자 오지 않았다.

이럴 때 흔히 쓰는 '웬지'는 틀린 표현이다. '왠지'가 맞다. '왠'과 '웬'의 발음이 거의 같기 때문에 혼동하기 일쑤다. 우리말에 '웬지'나 '왠일'은 없다.

'왠지'는 '왜 그런지 모르게' '무슨 까닭인지'를 뜻하며 '왜인지'가 줄어든 말이다.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처럼 쓰인다.

'웬'은 '어찌 된''어떠한'의 뜻을 가진 관형사다. 관형사는 조사도 붙지 않고 어미 활용도 하지 않는다. "웬 말이 그렇게 많아" "이게 웬 떡이냐"처럼 쓰이는데 이 경우 '웬'을 '왠'으로 적는 것은 잘못이다.

쉽게 구분하려면 '어찌 된''어떤'으로 바꿀 수 있으면 '웬'을, '무슨 까닭인지'로 바꿀 수 있으면 '왠지'를 쓰면 된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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