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사태와 비 대학 적인 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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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날 우리의 대학사태에 대처하는 당사자들 사이에는 학원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밖에 있는 사람들이나 다 같이 비 대학 적인 사고와 태도가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학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지성의 전당이다. 이 지성이 아닌 감정이나 격정의 소리가 지배하는 곳에선 이미 대학은 제 기능을 발휘 할 수 없다.
감정이나 격정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선악·호악 간에 이자택일의 한쪽을 확집 하는 성격을 가진 것이라면 이에 반해 지성은 양단간의 무수한 가능성과「뉘앙스」의 차이를 두루 작량 하는 것을 본령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본성에 있어 지성은「리버럴」하지만 과격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과격주의가 전부냐, 아니면 무냐 하는 배수의 진을 치고 행동한다면「리버럴」한 지성은 항상 다양한 입장과 견해의 공존을 받아들이고 그를 검토한다. 민주주의가 원래 이러한「리버럴」한 지성의 지배를 전제로 하는 제도라 한다면 대학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이 같은 민주주의의 정신이 관철됨으로써만 살수 있는 전당인 것이다.
학생「데모」로 전국의 대학 가운데 과반수가 계속 문을 닫고 있는 현실은 가슴아픈 일이다. 물론 학생「데모」가 일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부터가 불행한 일이다. 당국의 눈으로 보면 학생들의 시위는 이미 지성이 아니라 감정, 아니 격정에 사로잡혀있고「리버럴」한 사고보다는 과격한 실천으로 줄달음치고 있는 비 대학 적인 행동이라고 단정될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시위보다도 더욱 불행한 사태는 당국이 말하는 것처럼「일부」학생들의 소요가 있다고 해서 교문을 닫고 전체학생을 교사 밖으로 몰아 낸 대학기능 자체를 마비케 하려는 태도이다. 여기에는 또 다른 비 대학 적인 사고가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부」학생들이「데모」를 했다고 해서 전체대학생들이 강의를 받지 못한다면「데모」에 동조하지 않고 학업을 계속하겠다는「대다수」학생들의 견해나 이해는 압살되어 버리고 만다.
더욱이 대학 밖에서 학원문제를 해결하려는 당국자들이 대학 문을 열려면 일체의「데모」가 없어야 하거나「데모」를 하게 된다면, 학교를 휴업시키거나 해야한다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학원문제 수습의 길이 못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전부냐 무냐 하는 비지성적·비 대학 적인 사고라 아니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과거 10년 동안 국립 서울대학교의 일례만 보더라도 학생「데모」없이 무사히 소정의 학사운영을 마친 해란 거의 없었다. 그때마다 문교당국과 대학당국은 휴강 내지는 휴교조치로 이에 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학생동요가 반복되었다는 사실은 휴강이나 휴교조치가 학원문제 해결에 아무런 실효가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데모」나 소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학교 문은 열고 강의는 계속되어야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이점이 구미 각 대학의 학원문제와 우리의 경우가 구별되는 기본적인 차이다. 외국의 경우엔 학원문제가 한쪽에서는 피를 흘릴 만큼 난동 화하는 경우에도 다른 한쪽에선 강의와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고 도서관은 밤늦도록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학생동요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대학 문을 닫아둔다는 강경 주의나 결백주의로는 학원동요의 악순환만을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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