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질된 가족법 개정안 수정은 될 것인가|관계자도 몰랐던 개정안 국회제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년 이상의 진통 끝에 마련되었던「범여성가족법 개정촉진회」의 가족법개정안이 국회상정과 함께 다시「변질소동」을 일으키고 있다. 촉진회 회장이며 유정회 의원인 이숙종씨가 개정안의 일부를 말없이 고쳐서 제출했던 것이 뒤늦게 드러남으로써 일어난 이 소동은「변질」이 확인된 지 열흘이 넘도록 수습위원회조차 열리지 않아 많은 여성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작년 6월28일 61개 여성단체의 참가로 깃발을 높이 들었던 범여성가족법 개정촉진회는 김용한·이태영·김주수·박병호·한봉희씨 등 5명의 가족법학자들을 법률고문으로 위촉, 1년만인 지난 7월에는「호주제 폐지」등을 골자로 하는 10개항을 확정 발표했었다. 지난 9월28일 이숙종 의원 등 49명의 서명으로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을 때 일반은 물론 서명한 의원들까지도 제출된 안이 변질되었으리라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변질소식이 국회주변에서 뒤늦게 새어나오자 관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의심 없이 내용을 읽지 않은 채 서명했던 의원들과 기나긴 토론 끝에 개정안을 확정했던 촉진회 간부·법률 고문들 사이에서는『배신행위』란 규탄까지 터져 나왔다.
지난 17일 진상을 따지기 위해 모인 여성단체대표자 회의는 옥신각신 끝에 그대로 해산되었다.
이숙종씨는『촉진회가 마련한 개정안에 대해 남성 의원들의 반발이 예상외로 컸기 때문에 동조자를 더 많이 얻기 위해 김기수 교수의 도움으로 일부를 고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으나『6명의 부회장들과도 의논 한마디 없이 무슨 자격으로 고쳤느냐』는 공격에는『국회의원 개인자격으로 고쳤다』고 궁색한 대답을 하기도 했다.
이숙종씨가 김주수 교수의 도움으로 고쳤다는 내용은 촉진회 개정안 중에서「호주제 폐지」와「동성동본불혼제도 폐지」를 삭제하는 등 많이 후퇴한 것이다.
범여성가족법 개정촉진회는 그 동안 61개 참가단체와 개인 호응자들의 찬조금으로 운영되었고 개정법안도 그렇게 마련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의 격려가 있었다. 이러한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회장자신이 마음대로 내용을 고쳐놓고『개인 자격으로 제출한 안』이라고「비명」에 나선 것은「억지」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이었던 이숙종씨는 유정회 의원으로 지명된 후에도 여성단체협의회장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가족법 개정촉진회가 구성되자 다시 그 회장으로 추대되었다.『여성단체가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당사자들이 이러한 모순을 눈감고 넘어간 것이 잘못』이라는 반성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촉진회 부회장인 김정례·이태영·손인실·현기순·김봉희·오춘희씨 등 6명은 아직도 수습위원회 소집일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개정안 시비가 원만하게 해결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장명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