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도 추경예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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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5년도 예산 규모가 1조2천6백여억원에 이르는 초대형 예산으로 짜여졌기 때문에 그 동안 그 그늘에 묻혀 74년도 추경 예산안은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 못했었다.
전례에 없는 물가 상승율 대문에 74년도 세출입 규모가 다같이 크게 팽창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나, 추경 예산 규모가 본 예산 규모 보다 17%나 늘어나고 있으며 내국세 수입 증가율은 무려 본 예산 규모의 30%나 되고 있음을 직시할 때 74년도 추경 예산안의 심의도 75년도 본 예산에 못지 않게 철저히 해야 하겠음을 먼저 강조한다.
국회는 19일 새벽 예결위의 부별 심의를 마치고 이날 본회의에 추경 예산안을 상정시켰는데 총 규모 1천5백77억원에 이르는 추경 규모를 통분한 구체적인 심의 실적도 없이 본 회의에 상정시킨 것부터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추경 규모는 1천5백77억원이지만 조세 수입 증가 규모는 내국세 1천6백87억원, 관세2백24억원 합계 1천9백11억원이나 되고 있는데, 그러한 추가 세입을 경기 국면과 관계없이 재정 지출로 모두 소비해 버린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
경기 국면의 하강 추세 속에서 올해 들어 휴업한 업체만도 지난 9월말 현재로 8백54개나 되며 그 때문에 생긴 실업자 수는 6만3천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태가 그러하다면 세수입 증가의 일부를 국고 채무 상환에 충당함으로써 금융을 확대시켜 주는 경기 대책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음으로, 증세로 조달된 추경 예산의 세출 내용은 역 융자를 줄이고 전적으로 재정 소비를 확대하는 초과 소비형이라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소비자와 기업이 불경기의 중압 속에서 난관을 견뎌 내려고 안간힘을 다 쓰고 있는 이 때, 정부 소비만을 물가에 「슬라이드」해서 늘려야 한다면 이는 너무나 재정 중심적인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경기 대책으로서 재정 소비를 늘려야 한다면 그런 대로 수긍이 가는 바도 없지 않으나, 조세 증수를 통한 재정 소비 확대가 합리적인 경기 대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추경 예산 규모 1천5백77억원의 세출 내용은 국방비 증가 7백27억원, 비료 계정 4백24억원, 봉급 증가 2백44억원, 일반 경비 증가 2백63억원으로서 그것이 모두 필요 불가피한 지출 증가인지를 국회는 철저히 따져 줘야 하겠다. 더우기 투융자 예산을 1백1억원이나 줄이면서 일반 정부 소비를 그토록 늘려야 할 불가피성을 정부나 국회는 국민에게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어야 하겠다.
물론, 유류 파동 및 물가 상승에 따른 경비 증가, 안보 태세 강화의 필요성 증대, 공무원 처우 개선의 필요성 등은 모두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출 항목별 증가액이 모두 불가피한 것이냐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출 증가 요인을 구체적으로 심의해서 절실하지 않은 것은 대폭 억제토록 힘써야 한다는 것은 국회의 고유한 역할임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다.
74년도 추경 예산을 제대로 국회가 심의하지 못한다면 75년도 예산안도 합리적으로 다룰 근거를 잃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국회는 특히 주목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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