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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석유전쟁』선전포고|미의 대산유국 강경책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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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포드」, 「키신저」조가 마침내 석유수출국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지난 23일「포드」가 69개국이 참가한 세계「에너지」회의에서 석유 값 인하를 역설하는 동안「키신저」도 「유엔」총회에서 전례없이 강경한 자세로 같은 주장을 했다.
이들은 산유국이 스스로 석유 값을 내리지 않는 한 세계경제가 30년대의 대공황을 재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말하자면 원유 값을 둘러싼 싸움은 국제독점자본과 자원민족주의의 명분에 관한 투쟁이 아니라 경제적·현실적 문제임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발상은 그 나름대로 상당히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 석유 수출국은 올해만도 5백억「달러」이상의 외환순증을 보일 기세고 80년에는 이들의 외환보유가 3천억 「달러」선에 달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불수단의 이러한 편재는 국제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세계무역감소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이것은 즉각 수출경쟁의 격화와 평가 인하경쟁을 낳아 마침내는 모두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게『「포드」류 논리』의 흐름이다.
73년10월 어느 날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밀어닥친 이 난제에 대해 세계각국은 그 동안 대충 3가지의 대응책을 시도했다.
첫째 「프랑스」·일본 등이 주력했던 것은 산유국에의 수출증대를 통해 원유 적자를 상쇄하는 방법이었다.
일부 산유국의 무분별한 군비 확장과 방대한 사회간접 자본투자는 이와 같은 계략이 성공한 결과지만 원유 적자를 상쇄하기에는 그 힘이 너무나 무력했다.
둘째는 제3세계와 영국·「이탈리아」등이 적극 추진한 소위 「오일달러」의 환류 노력이다.
하지만 이것은 산유국의 개발도상국적 체질이나 외환운용 관행에 비춰 볼 때 거의 몽상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현재 「아랍」산유국들은 「유럽 달러」시장에 단기성 자금만 방출하기 때문에 이를 다시 장기차관으로 전용하는 「유럽」은행들은 신용공황위협에 전전긍긍하는 형편이다. 말하자면 이러한「패턴」의 환류는 오히려 병리만 심화시켰던 것이다.
셋째가 바로 이번「포드」-「키신저」의 연설에서 재확인 된 원유가 인하 주장이다.
미국은 이미 진작부터 이 길을 추구했었다. 그러나 지난2월의 석유 소비국 회의에서 명백히 증명되었듯이 「프랑스」등 중요 소비국이 보조를 맞춰주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에 「포드」와「키신저」가 산유국에 대한 각종 제재조치까지 시사하면서 강경한 태도를 취한 것은 일본·「프랑스」·서독·영국 등이 미국식의 대응책에 찬성하고 나섰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란」·「리비아」등 거의 모든 석유수출국들이 「포드」및「키신저」의 연설에 대해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지만 지금까지 이들의 눈치만 살피던 서방세계의 중요 석유 소비국들은 침묵으로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실제로 서방 제국들이 석유가격 문제에 관한 미국정부의 결단을 추종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8월말 현재 미국은 무역수지면에서 총21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가장 큰 적자요인은 원유 수입이었다. 예컨대 작년 8월의 원유 수입액은 7억5천8백만「달러」였으나 올해에는 3배가 넘는 25억「달러」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원유적자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서방세계 「리더」로서의 지위를 조만간에 포기해야 하고 현재 구축되어있는 미·소 양국의 세계 공동관리체제도 위협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미국측 입장은 서방공업국은 물론 석유가 폭등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대부분 제3세계 개도국의 경제적 사정과도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강경책이 국제적 여론의 호응을 받을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미국이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진 일련의 대응 조처, 즉 ①대산유국 식량·무기·공산품 금수조처 ②무력사용 ③외교적 고립 ④석유소비 절감을 통한 판로제한 ⑤「오일달러」의 통화효력 제한 등의 방안은 모두 정치적 이유로 그 실행이 어려운 것들이다.
결국「키신저」의 강경 발언은 제2단계 석유전쟁에 임하는 미국의 결의를 극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서방공업국의 대산유국 결속을 기해 보려는 과장된 선전포고의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홍사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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