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 난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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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주위에서 굳어져 가는 버릇 중에서 나의 비위에 몹시 거슬리는 것이 한가지 있다. 자가용차에서 의젓하게 내리는 이는 공손한 대접을 받는다. 흑색 대형일 경우에는 특별 대우다. 예절바르고 친절한 것은 권장할만한 일이겠기에 여기까지는 나무랄 데가 없다. 나무랄 곳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차별하는데 있다 하겠으며 이 버릇이 굳어지면서 반사적으로 승차자를 지나치게 우대하는데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예사로 되어버린다면 차별을 피하기 위해서는 또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필경 보행을 삼가야 할 것이다.
목적지에 따라서는 도보나 「버스」면 족할 거리인데도 「택시」를 타거나 남의 자가용차를 빌어 쓰는 일이 많아진다. 그럴싸한 곳에 자주 출입해야 할 경우면 아예 자가용을 구입,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직접적 결과는 가정에서는 가계에 압박이요, 회사에서는 「오버헤드」의 과다 지출이요, 관청이면 납세자의 부담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자가용을 사서 매놓아 둘수 없는 사정일때에는 차별을 감내해 나가야 하겠고 불만을 억눌러야 하겠다. 이렇게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영향력 있는」 계층 인사는 숫제 시내에서 보행을 하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
아마도 이 경향과 병행하면서 보도는 푸대접을 받아봤다. 중앙청에서 남대문까지 수도의 대표적 대가로에 붙은 인도가 1「미터」 미만으로 쪼들린 곳이 생겼다. 한국은행 앞에도 또 한군데 있다. 광장은 자동차용으로 바뀌었고 인도는 점점 좁아져 갔다. 좁은데다가 앞뒤에서 「지그재그」로 달려오는 자전거나 위·옆에서 삐죽하게 내밀고 있는 전주에 박힌 못 같은것에 신경을 쓰느라면 즐거운 보행은 없다. 자전거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 이 두발 수레는 시내에서는 운행의 자유마저 박탈당한 것 같이 이리저리 쫓기며 달린다.
어린이들이 졸라대는 자전차는 마음놓고 탈만한 공간이 없어 사 줄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이게 된다.
극성맞은 시 당국이 무엇인가를 개발한다는 이유로 소공원·놀이터·공지를 모조리 불하해 버린 후로는 자전거 타기·공차기는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인명 존중의 이유로 금지되어야 할 형편이다.
이상은 7∼8년 전 어느날 내가 노상에서 『영감 어찌 보행을 하고 계십니까』하는 인사를 받고 난 후 거닐면서 떠올랐던 감상이다. 이만큼 오래전 감상이 변하지 않고 아직껏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타당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감각이 비뚤어진 것이 아니라면 보행 대 차행의 차별은 「오일·쇼크」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당연한 일처럼 틀에 박혀 습성화되었다.
나는 건각은 아니지만 걷기를 즐긴다. 걸을 것인가, 「버스」를 탈것인가, 「택시」로 갈 것인가 또 자가용을 살 것인가, 팔 것인가 등의 결정은 나에게는 남다른 고민의 씨가 되어왔다. 길만 편하다면 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싫어도 걸어야 할 시민이 또한 많다. 도시는 길을 다수의 보행자를 위한 명랑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소수의 자동차 이용자들의 편의만을 두둔해 온 것이 아니었던가. 또 도시 고속 교통망의 설비를 게을리하게 한 원인은 이 불건전한 경향이 아니었던가.
서인석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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