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위한 2단계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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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문제의 『탈「유엔」』을 추구해온 정부가 결국 미·일 등 우방 7개국(「캐나다」추가)을 통해 「결의안」을 「유엔」본부에 제출함으로써 북괴측 안과 함께 「한국문제」는 금년 「유엔」총회(29차)서도 뜨거운 「이슈」로 제기됐다. 정부는 『남북한이 대화를 계속하기를 희망한다』는 작년도 「유엔」총회의 「합의성명」 채택이후 지금까지 한국문제의 「유엔」 상정을 반대하는 입장을 대내외로 밝히고 우방 및 중립국들에 사절을 보내 북괴로 하여금 한국문제안건 상정을 포기하도록 분위기 조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북괴 측이 34개국의 서명을 받아 『「유엔」 기치하의 주한 전 외국군의 철수』라는 안건을 지난 8월16일 「유엔」본부에 제출함으로써 이에 대항하는 2단계 전략으로 우리측 결의안을 제출한 것이다.
따라서 『28차 「유엔」총회의 한국문제 합의사항의 완전이행과 한반도 평화안전 유지의 긴요성』이란 제목의 우리측 결의안은 적극적·능동적인 의미보다 북괴 측의 안건을 봉쇄하기 위한 대응 전략적인 의도에서 내놓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한국문제에 대해 균형 있는 토의가 이루어지도록 우리측 결의안이 제출된 것』이라는 외무부 당국자의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전문과 2개항으로 된 결의안은 1항에서 남북한간의 대화가 계속되기를 촉구하고 있으며, 2항은 주한「유엔」군 철수문제는 안보리에서 「직접당사자」와의 협의를 거쳐 적절한 시기에 토의되기를 바란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정부는 결의안에서 북괴 측의 주한 「유엔」군 철수안이 「유엔」총회에서 다뤄지는 것을 반대하며 꼭 다뤄지게 된다면(「유엔」군 파견을 안보리서 결의했으니 만큼) 안보리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중요한 대목은 「직접당사자」의 규정과 그 범위문제다.
미·소·중공 등 안보리 회원국은 자동 「케이스」범주에 드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유엔」군이 주둔하고있는 한국만이 「직접당사자」에 들어가는 것인지, 「유엔」군 사령관과 휴전협정을 맺은 당사자로서의 북괴도 포함되는 것인지 외무부는 뚜렷이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의제의 토의과정에 들어가면 「직접당사자」의 범주가 확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작년도의 서방측 결의안에는 『휴전협정의 준수를 보장하기 위해 직접적인 관련 당사국들과…』라고 휴전협정의 당사자인 북괴를 포함시키고 있다.
어쨌든 주한「유엔」군의 철수문제는 한국과도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못박기 위한 규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결의안에서는 「유엔」 군사 해체 문제가 거론되어 있지 않았던 점에 비추어 이번 결의안이 조건부 해체토의를 담고 있는 것은 정부의 정책 전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북괴측 안의 공동제안국 수가 당초보다 2개 늘어 현재 34개인데 비해 우리측 공동제안국 수는 7개국밖에 안 되는 사실은 우리가 「한국문제」의 「유엔」 상정을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공동제안국 확보교섭을 충분히 벌이지 못한 채 서둘러 제출한 때문이고 앞으로 계속 추가될 것이라는 당국자의 설명이다.
작년 서방측 안의 공동제안국은 당초 12개국에서 27개국으로 공산측 안은 21개국에서 35개국으로 늘어났었다. 안건을 내놓긴 했지만 ?부는 「유엔」총회에서의 한국문제 불토의에 최대의 목표를 두고 있다. 그것은 운영위의 의제채택 과정이나 막후교섭을 통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작년도 서방측 결의안에 포함됐던 남북한 동시가입 안이 이번에 빠진 점, 그리고 단독가입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 반영 안된 것도 「불토의」 자체에 역점을 둔 전략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선 한국의 「유엔」가입 안이 제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정부가 한국문제의 탈「유엔」을 추구하는 것은 비동맹 제3세력권 국가의 대거가입에 따른 「유엔」 세력구조의 변질과 북괴에 정치선전의 무대를 제공할 뿐 아무런 실익이 없고 표결의 위험부담마저 져야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당사자 해결의 원칙을 제시하고 한국문제는 남북한의 대화를 통해 해결되어야한다는 논리에서 북괴 측의 성의를 촉구하고 있다.
금년 「유엔」총회에서 「한국문제」 안건이 표 대결로 승부가 가름될 것인지, 아니면 작년과 같이 막후협상에서 극적으로 합의를 보는 「협상재판」이 될지는 현재로서는 예견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미국과 중공, 미국과 소련간에 한국문제협상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총회에 참석하는 미·일·중공·소 등 한국에 관심이 큰 4대강국의 외상간에 한국문제에 관한 막후협의가 전개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보아야하며 - 한국정부의 전략을 지지하는 미국의 입장이나 4강간에 협의를 갖겠다는 「기무라」 일본외상의 말로 미뤄보아도-한국은 막후타결을 위한 노력과 표 대결의 이중전략에 맞추어 현지작전을 펼 방침이다. 금년 「유엔」총회에서의 한국문제 토의는 「유엔」군사 철수문제에 초점이 모아질 것이지만 전망은 그렇게 낙관만 할 것도 못된다는 상황이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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