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은 물의 해 물의 날] 뭍에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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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해'이며 22일은 제11회 '물의 날'이기도 하다. 굳이 물의 이름을 붙인 날이나 해를 정한 것은 물을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하고 관리와 보존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늘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물도 알고 보면 한정돼 있다. 아직도 마음놓고 마실 물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물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의 물 사정을 살펴본다.

서울 서초구. 흔히 부자 동네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도 수돗물이 공급되지 않는 곳이 있다.

방배3동 우면산 자락의 속칭 성지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낡고 허름한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개발제한구역에다 무허가 주택이라는 이유로 주민 64가구 1백70여명은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뒤편 우면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수를 비닐 호스로 받아 식수로 사용한다. 지하수를 파놓은 집들도 있지만 무허가 공장과 쓰레기 더미가 뒤섞인 곳에서 퍼올린 지하수를 그대로 마실 수는 없다.

식수로 쓰는 계곡수.약수도 안심할 수 없다. 흐르는 물도 별로 없는 데다 주변에는 음식쓰레기와 잿더미가 쌓여 있다.

가파른 경사를 따라 1㎞ 남짓 올라가면 약수터가 있지만 "먹는 물 수질기준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붙어 있다. 1979년부터 이곳에 산다는 崔모(71)씨는 "봄철 가뭄에는 약수터 물이 부족하고 수질도 나빠 마시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수도사업소 관계자는 "계곡수나 지하수가 오염된 줄은 알지만 무허가 건물이고 도로가 나있지 않아 수도관을 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청 측은 "수도는 우리와 상관없다"며 외면하고 있다.

서울에는 이곳뿐 아니라 강동.노원.은평구 등의 개발제한구역 내 주민 4백여명도 수돗물 공급을 못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서울을 벗어나면 물사정은 더 나쁘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 이 마을 2백가구 6백여명의 주민이 마시는 물은 계곡수를 이용한 간이상수도다.

세 개의 간이상수도별로 주민 모임이 구성돼 순번제로 청소도 하고 소독도 맡는다. 한 곳은 물 사용량에 따라 소독제 알약이 자동 투입되지만 다른 두 곳은 눈대중으로 적당히 소독제를 넣고 있다.

군(郡)에서 가끔 수질을 검사하고 결과를 통보해 주지만 장마철이나 가뭄 때가 되면 불안하다. 심재준(41)이장은 "낡고 오래된 수도관을 교체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는 1만1천여개의 간이상수도 시설이 있고 전체 인구의 4.3%인 2백8만여명이 간이상수도 물을 마시고 있다. 그러나 소독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전문가들은 간이상수도 물이 제1군 법정 전염병인 파라티푸스 등 각종 수인성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환경부 수도관리과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 간이상수도의 수질기준 초과율이 1.9%로 일반 정수장 0.1%에 비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자치단체에서 직접 관리하는 정수장이라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남한강변 여주군의 D정수장. 하루 1천t 정도의 지하수를 끌어올린 뒤 걸러내고 염소로 소독해 인근 1천3백여명의 주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곳이다.

지난 13일 오후 면사무소 뒤편 언덕에 위치한 이 곳을 찾았을 때 정수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청원경찰 한 사람뿐이었다. 그나마 "배치된 지 이틀밖에 안돼 시설에 대해 잘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모래여과 탱크의 페인트칠은 절반 이상 벗겨져 있었고 지난해 여름 떨어진 벼락으로 계량기도 고장났다. 정확한 양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동되고 있었다.

지하수를 퍼올려 하루 6백~7백t의 수돗물을 생산해 인근 2백50가구에 공급하는 양평군의 O정수장은 염소 자동투입기가 있지만 3년째 고장난 채 방치돼 있다.

지역 주민들은 "서울의 상수원 지역에 살면서 여러 규제를 감당하고 있는 판에 물이라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강찬수.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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