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논리의 일본 태도 불쾌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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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 대통령 저격사건이 일어난 후 일본 정부나 언론계 일각에서 범인이 재일 한국인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우리 나라의 정계는 물론 학계·언론계·법조계에서는 일본인들의 그러한 태도는 『그들의 얕은 식견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불쾌하다』는 소리가 높다.
김종필 총리가 20일 TV연설에서 『어떤 점에서 보더라도 일본이 이 사건에 대한 도의적·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는 없다』고 지적한데 대해 각계는 적극적인 공감을 표하고 있다. 사건발생 후 일본정부 및 언론기관 등이 취한 불투명한 태도를 비판하는 각계의 소리를 묶어 본다. <편집자주>

<일 정부에 대해>

<조총련 활동 허용 미련한 일>오종직<언론인>
국제사법의 관례를 보면 문세광의 일본 내 배후를 수사하는 것은 일본의 권한에 속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박 대통령의 저격사건에 대해 『도의적·법률적인 책임이 없다』고 운운한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이 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재일 한국인으로부터 세금을 받고 그들의 신체상·재산상 권익을 보호하고 있는 만큼 동시에 그들의 범죄에 대해서도 형벌을 과할 권리가 있는데 문의 범죄실행이 한국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외면하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 안에 문세광과 공범자가 있다거나 그의 범죄방조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일본정부는 마땅히 이들의 범죄를 다뤄 법률적인 책임을 져야한다.
일본 정부는 조총련을 통해 북괴와 모든 교류를 해왔다. 그렇다면 조총련은 북괴 노동당의 일본지부로서 사실상 북괴의 주일대표부 구실을 해온 셈이며 일본정부는 그들 영토 안에 2개의 공산당을 인정하고 있는 것과 같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타국의 정당지부를 자국 안에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없다. 물론 일본 안에 소련이나 중국공산당의 지부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고 공산권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사상자유」란 이름아래 조총련의 공공연한 정치활동을 허용하는 것은 일본식 편의주의에 따른 것이며 미련한 조치다. 한국정부는 이 같은 견지에서 일본의 수사협조와 일본내 반한운동 규제를 요청해야 할 것이다.

<발뺌만 말고 수사에 협조를>|이정식<동국대 교수. 정치학>
일본이 자기들 국내법에 명시된 사상운동의 자유를 들어 박 대통렁 저격범 문세광의 배후수사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현 한·일 관계의 미묘한 상황에서 발뺌하려는 호도책이다. 그들이 아무리 사상운동의 자유를 거론하지만 그 「자유」가 인접국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문세광이 한국인이라고는 하지만 교육적 배경이 「일본적」이고 또 그의 입국절차가 일본인 자격으로 행해진 만큼 이번 사건에서 일본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국제정치의 윤리적인 면에서도 지탄받아야 한다. 일본측의 주장대로 라면 그들의 자유민주주의는 아직도 「빨치산식 제국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한국 수사당국은 일본의 협조를 필요로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수사상황이 일본에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나타난 일련의 일본측 반응은 그들 국내의 역관계에 의해 크게 좌우된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집권당인 자민당도 조총련을 지원하고있는 야당의 눈치를 봐야하는 어려운 입장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국민들이 반일「데모」등으로 정치적 좌절감을 해소하려는 것은 지양해야하며 이 같은 행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 관계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 언론에 대해>

<편향보도로 여론 호도말라>|윤임술<신문 연구소장>
일본의 신문들이 자기반성 겸 자기입장을 세우는 듯한 사설을 게재하고있으나 일본의 「매스컴」이 편향성을 띠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간파해온 것이다. 이번 사건뿐 아니라 일본의 신문들은 우리에 대한 것이라면 언제나 좋은 면보다는 좋지 못한 면만을 부지불식간에 파헤쳐 왔다. 신문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나 나타난 지면을 놓고 볼 때 어쩔 수 없는 증거들이 많았다.
이런 탓으로 일본의 청소년들이 자기네들 즉 일본의 신문을 보고 받아온 한국의 인상이란 결코 좋은 것이 아닐 것이고 보면 일본 신문이 이번 사건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매스컴」을 통해 볼 수밖에 없는 일본의 청소년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쁘게 느끼게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의 범인도 일본에서 자랐고 일본의 신문을 통해서 의식판단을 했을 때 그 범행의 동기에 적지 않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일본의 언론은 여러모로 책임이 있다고 보아진다.
한·일 우호에 어떤 정치적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매스컴」의 앞으로의 태도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클 것을 생각할 때 일본의 언론은 그 태도를 고쳐야 할 것으로 본다. <일은 입장 바꾸어 생각해야>|박승서<변호사>
일본 정부가 이번 사건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본 수사당국은 미온적인 수사자세에 대하여 구구한 변명을 하고 있는 듯하나 이러한 중대사건이 일본 국토 안에서 그 음모행위가 있었고 예비행위가 되었다고 한다면 일본 국내를 당연히 그 범죄지의 하나로 보아야한다. 일본 국내에 공동정범·교사범·방조범 등의 범인이 있다면 문세광은 그 공범중의 한사람으로서 그 실행만을 우리 국내에서 했을 뿐이므로 오히려 이번 사건의 범죄 본거지는 일본 국내라는 결과가 된다.
그런데도 갖은 핑계를 다해가며 적극수사에 회의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만일 입장을 바꾸어 일본 국내에서 이러한 저격사건이 발생했다고 할 때 그들은 우리측의 수사 실무적인 구실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은 아직도 대공자세에 있어 안이한 편견을 갖고 있으며 대한자세에 있어 부질없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 대한 편향보도로 이 사건은 근원적 책임의 일단은 져야 할 일본언론도 이 기회에 반성해야 할 것이다.
또 이 사건이 비록 한국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들이 일본에서 성장하고 일본의 국내분위기의 영향을 받아 범행의 결의에 이르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국 일본인들의 얇고 얕은 식견을 보는 것 같아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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