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의 계절에 맞는 새 학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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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무리 세속이 질서를 잃고 어지러워 보일 때에도 산과 바다엘 찾아가 보면 거기 자연은 조용히 말없는 가운데 자기 운행의 궤도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수많은 「바캉스」의 행각이 아무데나 물이 있고 그늘만 있으면 몰려가 낮 밤을 가리지 않고 떠들썩하게 수선을 피워대고 있는 가운데서도 입추가 지난 어제오늘의 날씨는 벌써 한여름의 그것은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다르고, 그 보다도 아직은 불볕처럼 따가운 한낮의 햇볕조차 거기에는 무엇인가 다른 것을 감촉케 하는 서늘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잊혀진 농촌 들판에 나가 보노라면 초록일색, 마치 어떠한 변화도 거부할 것처럼 보이던 논밭의 빛깔도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음을 역력히 느낄 수 있다.
모든 열매가 여물어 커지고 그 빛깔도 차차 제 고유의 빛깔로 침잠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게된 것이다. 모두다 성숙의 표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들이 더위를 못 이기고 방학이다, 「바캉스」다 하고 북새를 치던 그 성하의 계절에도 자연 속에서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소리 없이 성숙의 시간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사람들은 홀연 우주의 또 다른 질서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좀더 자연에 가까이 살고 있다고 한다면 어른들에 비하면 어린이들이 또한 자연에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른들이 보다 더 사회의 질서를 위해서 살고 있다한다면 어린이들과 또 젊은이들은 보다 더 자연 속의 질서에 의해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여름의 더위에 시달리다 논에 나가보면 내 눈을 속이고 어느 새 벼이삭이 그처럼 무거워진 것을 큰 놀라움을 가지고 보게 된다. 그와 비슷하게, 궤도를 일탈한 세속의 풍진과는 아랑곳없이,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세계 또한 어른들의 눈을 속이고 모르는 사이에 자란 논의 벼이삭처럼 자라고 여물기를 기대하는 바람이 있다.
지난 여름방학이 앞당겨졌건 길어졌건, 가을학기가 짧아졌건 말건 성숙을 의한 스스로의 시간을 호흡하고 있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겐 그것이 다 무슨 별난 일이겠는가. 노염이 아무리 뜨겁다 하더라도 다가오는 가을을 막지는 못한다. 사나운 비바람이나 삼복의 폭염 속에서 오곡백과는 여물고 익어 가을을 가져온다. 지금 주변의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벅찬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고난을 이겨내고 성숙하는 젊은이들이 있기에 한국은 내일의 가을을 주목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하면 여름방학 때 단련한 건강한 몸으로 다시 책에 파묻혀 공부에 열중하는 일 뿐이다. 참다운 성숙의 열매를 거둬들일 때까지 학구의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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