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패러디 파라다이스] 변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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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호 30면

아침에 출근 버스를 타려면 육교를 건너야 한다. 인사 발표가 있는 날이다. 지난주 송년회 자리에서 사장은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장은 일할 능력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이런 때야말로 그 사람의 예전의 실적을 떠올려볼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은 분명 좋은 암시였다.

육교에 오를 때면 늘 걸음이 빨라진다. 안타까운 일은 버스를 바로 눈앞에서 놓치는 일이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버스가 들어선다. 이 버스를 놓치면 10분은 넘게 기다려야 한다. 계단을 뛰어내려 간다. 버스는 곧 정류소를 떠날 것 같다. 아아, 세상에! 그의 몸이 중력을 벗어나 허공으로 떠오른다. 맑고 차가운 겨울 하늘로. 그는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다음 순간 모두가 한꺼번에 폭발하여 자신을 덮쳐올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청나게 힘센 중력의 손아귀가 공중에 떠 있는 206개의 뼈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사정없이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순간을.

그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지난해에 이어 또 임원이 되지 못한 것이다. 아침에 육교 계단에서 넘어질 때 다친 허리가, 등짝이, 목이, 206개의 뼈가, 그리고 심장이 욱신거렸다. 승진한 동료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면서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는 발음에 아주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단어와 단어 사이에 긴 간격을 두어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승진을 축하해요.” 그것은 틀림없이 예전의 자기 목소리였지만, 거기에는 저 아래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듯한, 억제할 수 없는, 가늘고 고통스러운 고음의 소리가 섞여 있었다. “저는 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요, 하하하.” 물론 누구보다 그는 잘 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는 사실을.

대개 승진 누락은 권고사직의 완곡한 표현이다. 혹시 인사에 불만이 있습니까? 그러면 제발 사직서를 써주셔요.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다. 먹고살기 위해선 꼬박꼬박 돈을 벌어야 했다. 아내는 아픈 몸으로 시간제 일을 하고 아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세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바를 그들은 최대한 이행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그의 얼굴만 보고도 아내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늦은 저녁을 차리면서 아내는 그를 위로하기 위해 몇 번이나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게 귀찮고 화가 났다. 겨우 몇 술 뜨는 시늉만 했을 뿐 방의 가장 어두운 구석으로 물러나 가만히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방으로 들어온 아내가 말했다. “우리처럼 이렇게 힘겹게 일해야 하는 처지에 집에서마저 이런 끝없는 고통을 겪으며 산다는 건 정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는 아내에게 소리쳤다. “그래.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 악마여, 제발 좀 이 모든 것들을 다 가져가다오.

잠자리에 누웠을 때 어떤 깨달음이 마치 등짝의 통증처럼 욱신욱신 아파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남들에 대한 배려와 조심성을 자랑으로 여겼던 그였다. 그는 최근에 다른 사람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는 데다, 자신의 그런 행동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는 변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 컬러 부분은 모두 카프카의 『변신』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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