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하고 규모 키우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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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산가족 상봉이 3년4개월 만에 재개된다. 어제 남북은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고 20~25일 금강산에서 상봉 행사를 갖기로 합의했다. 당초 우리 측이 제시했던 날짜보다 사흘 늦춰지는 것이긴 하지만 이달 하순께부터 실시되는 키리졸브 한·미 연합훈련과는 시기적으로 크게 겹치지 않는다.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상봉 가족 숙소 문제도 남측이 제시한 금강산호텔과 외금강호텔을 북측이 받아들였다.

 지난해 9월에도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하고,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북한이 행사 나흘 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바람에 무산된 전례가 있다. 따라서 아직 100% 마음을 놓을 순 없지만 이번 경우 남측 제안을 북한이 사실상 모두 수용한 셈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성사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한 만큼 빈틈없는 준비를 통해 원만하게 행사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정치와 무관한 인도주의적 문제다. 그러나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막혀 있는 상태에서는 남북관계를 푸는 첫 단추의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남북관계 개선 의지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첫 번째 시금석이 이산가족 상봉인 셈이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다른 사안과 연계시키지 않고, 우리 측 제안을 다 수용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단초는 마련됐다고 본다.

 상봉을 신청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남측 인원만 약 7만 명이다. 지금까지 해 온 대로 한 해 몇 백 명씩 만나는 이벤트성 행사로는 상봉을 기약하기 어렵다. 이번 상봉을 계기로 행사를 정례화하고 규모도 키울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가 풀려야 가능한 일이다. 이번 상봉 행사가 차질 없이 마무리된다면 북측의 관심 사항인 금강산 관광 재개나 5·24 조치 해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과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북측의 성의 있는 조치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문제다.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신뢰를 쌓아나갈 때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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